2024년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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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일본 - "Made in Japan"과 보트피플

믿음의 뿌리가 그리운 ''잘 만들어진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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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상릉 맞은 네덜란드 출신 선교사 생일축하모임에 함께한 이상원 신부(맨 뒤쪽).
 
 
  일본에 온 지 16년이 돼 간다. 1992년 예수회에 입회, 수련과 철학과정을 밟은 뒤 1996년 일본에 파견돼 신학을 공부하고 2001년 도쿄 예수회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피정은 충전 아니라 방전하는 것

 올해 연피정은 어디로 갈까? 연피정을 갈 데도 마땅치 않아 해마다 고민이다. 그래서 일본 연학수사들 연피정에 자주 참여한다. 수도회가 양성과정에 있는 수사들에게 가장 좋은 프로그램을 해마다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하는 속내에서 비롯됐는데 해마다 괜찮은 선택인 듯하다.

 어느 해 연학수사들 연피정에 참석했을 때 피정 말씀이 생각난다.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의장 겸 이주사목평의회 의장인 레나토 마르티니(예수회) 추기경이 남미 예수회원들을 위해 피정지도를 갔다고 한다. 자기 회원들과의 피정이었기에 속마음을 털어놓고 나누었을 터다.

 "우리 예수회원들의 미션이 점점 제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왜 그럴까? 우선 기도의 결핍이 심각하다. 기도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둘째로 감각적 욕망이 너무나도 앞서 있다. 먹고 마시고 입고 여행하고 싶다고 하면 누구도, 심지어 장상조차도 막지 못한다. 셋째로 수도자로서 자기 자신을 영적으로, 인간적으로 향상시키고자 하는 열망이 보이지 않는다. 넷째로 자기 생활을 아주 잘 적당히 속이는 거짓된 삶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어 이제는 삶이 기도의 반성 자료도 되지 않고 있다(아마 이 말씀을 가장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또 "피정이란 재충전하러 가는 게 아니라 방전(放電)하러 가는 것이다"는 말도 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옛날 충전기가 생각났다. 새로 사온 걸 처음에 반만 쓴 상태로 그냥 충전해 버리면, 충전용량은 계속 전체의 반밖에 되지 않았다.
 새 사제가 되자 일본 가톨릭신문사에서 원고 청탁이 들어왔다. 한국인 사제로서 그동안 일본교회에 대해 느낀 점을 뭐든지 좋으니 써달라고 했다. 그래서 느낀 대로 썼다.

 "일본교회는 아주 잘 만들어진, 또 모두가 좋아하는 메이드 인 재팬(Made in Japan)이다. 그리고 그 배 안의 사람들은 바다 위에서 표류하고 있는 보트피플 같다…." 다음날 신문사에서 전화가 왔다. 보트피플 이야기는 빼겠다고 한다. 자존심이 상했나보다.

 #사제는 `용서`로 살아가

 2년간 교구 신학생 양성 담당자로 있을 때 일이다. 신학교에 가고 싶어하는 사제 지망자를 면접했다.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눈 뒤 첫 질문을 던졌다.

 "만일 면접에 떨어진다면, 형제의 어떤 부분 때문에 떨어졌다고 생각하실 건가요?" 그는 아침에 늦게 일어나고, 제대로 공부를 할 능력이 없으며, 여자 친구가 있다는 등등의 핑계를 댔다. "알고 있다면 그것을 고치세요."

 그리고는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만일 신부가 됐다고 합시다. 그리고 옷을 벗지 않고 끝까지 사제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그 무엇이 있었기에 사제생활이 가능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가 "으응… 어어…"하며 대답을 하지 못하기에, "괜찮아요. 지금 대답을 찾지 못해도 좋아요"하고 면접을 끝냈다.

 수도원으로 돌아와 원로사제와 오늘 면접장에서 던진 두 번째 질문을 갖고 대화를 나누니, 그분은 "나는 알아. 그건 기도야. 기도, 중요하지!"하고 말했다. 하지만 내가 바라던 대답은 기도가 아니라 `용서`였다. 예수회에 입회해 지금까지 형제들한테 용서받고, 본당 사도직 현장에서 용서받고, 가족한테서 용서받고,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 나를 용서하고 받아줬기에 사제로서의 삶이 가능했다.

 #침체된 일본교회 현실

 내가 사는 야마구치(山口)에는 예수회 본당 18곳과 유치원 16개, 예수회원 26명이 있는데 사제 평균 연령이 77살이다. 우리 교구는 1997년 사제서품식을 끝으로 지금까지 15년간 사제 탄생이 제로(0)다. 사제 성소도 없고, 신자도 적다. 사람들은 이것이 일본교회 현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놓쳐서는 아니 될 또 하나의 현실이 있다. 하느님 아들이 사람이 됐고 십자가에서 죽었고 마침내 부활했다는 예수의 강생과 수난과 부활이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현실이다. 그러기에 나는 산다.

 "지금 교회에 의문을 품고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노인들은 살아있는 한 교회를 떠나지는 않겠지만, 의문과 불만은 갖고 있다. 그 큰 이유는 사회 전체 풍조에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젊은 사제들의 샐러리맨화다. 아무리 열심히 신학교에서 공부했어도 옛날 선교사들과는 무언가 다르다. 젊은 사제들은 옛날 신앙심을 이해하지 못할지 모른다."

 이는 일본 그리스도교 순교사에 관한 소설의 한 부분이다. 450여 년 역사의 일본천주교회, 이들의 신앙 선조와 순교 신심, 순례지에 관한 서적이 한국에도 많이 소개돼 있다. 한 권 읽어보기를 권한다. "아리가또우"(ありがとう,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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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도 석탄을 연료로 삼아 달리는 증기기관차를 타고 소풍을 나온 예수회 야마구치지구 소속 본당 유치원생들과 이상원 신부.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2-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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