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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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중) 일본, 일본인, 일본교회

이주민 신자들과 연대 모색해야 할 교회-이상원 신부(예수회, 일본야마구치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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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에서 가장 가깝다는 시모노세키는 재일동포들의 애환이 배 있는 곳이다.
 
+ 예수님의 미소

 일본 가톨릭 신자는 400년 전에 40만 명이었는데 400년이 지난 오늘도 40만 명이다. 신비다. 교회 핵심은 60대와 70대로, 부모 세대는 열심이지만 자식들에게 신앙이 이어지지 않고 있다.

 젊은이가 교회에 오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별로 위기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본당 활동에는 열심이지만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에게 다가가 복음 선교를 하는 데 적극적이지 못하다면, 그래서 결국 다음 세대를 짊어질 사람이 없어진다면 교회는 어떻게 될까. 마지막 사람이 불을 끄고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 들어 일본 가톨릭 신자는 100만 명으로 급증했다. 남미와 아시아, 동유럽 등 가톨릭 국가 이주노동자들이 유입되면서부터다. 일본 신자 40만 명에 외국 신자 60만 명을 합쳐 100만 명을 헤아린다. 이 통계에 일본교회는 응답해야 한다. 자신들의 교회를 외국인에게 빼앗겼다는 생각을 해야 할지, 아니면 이주노동자와 연대하는 귀중한 기회로 여길 것인지 성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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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 히로시마 기옹본당 첫영성체 예식에서 감사글을 읽는 주일학교 어린이.그 뒤가 필자.
 

 #성체조배, 신앙인의 진정한 휴식

 "휴(休)=인(人)+목(木). 십자가(十)에 두 팔(八)을 벌리고 매달리고 부활한 예수님(木), 그 곁에 우리(人)가 머무른다. 이것이 신앙인이 휴식하는 모습이고, 성체조배 시간이다"하고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설명하자, 뒷좌석에 앉은 부모들은 `아, 오늘도 새로운 가르침`하며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아이들은 "중국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만들었을 리 없다. 말도 안 된다. 근거를 대라"고 책상을 두들기며 아웅아웅한다. "그러면, 이건 어떠니? 애(愛)=수(受)+심(心). 받아들이다(受), 무엇을? 네 마음(心)과 내 마음(心)을. 어디로? 가운데로. 그것이 사랑이란다."

 요즘 일본 남학생들은 야구와 축구 등 운동경기로 주말과 주일이 더 바쁘다. 지난해 일본 여자축구 대표팀이 세계대회에서 우승하자 여자축구 붐이 일어 이젠 여학생들도 공을 차러 나간다. 그 때문에 주일학교 아이들마저 이래저래 다 빠져나가고 있다. 하지만 과학이 없으면 인간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예술이 없으면 쉴 수 없듯이 종교가 없으면 자기 힘으로 설 수 없는 법이다. 그래서 난 주일학교 프로그램 준비와 교육에 더 힘을 낸다.
 
 #피정지도를 하게 된 사연

 어느 날 주교관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주교관에 있는 미야하라라고 합니다. 내년도 저희 교구 사제 연피정을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연피정? 그것도 교구 사제? 아니아니 싫다 싫어. 부담된다.`
 "저는요, 유명한 신부도 아니고, 책을 낸 적도 없고, 요즘 화제 인물도 아닌 그냥 보통 신부입니다. 교구의 중요한 행사인 만큼 잘 생각해서 찾아보시고(자기 맘대로 정하지 마시고), 먼저 주교님과 상의하셔서 정하세요"했더니, 불쑥 "제가 주교입니다"하고 답변한다. 이웃 교구 주교님이었다.

 내가 남의 나라에 와서 남의 교구 주교의 그 긴 이름까지 일일이 외워야 하나 하고 미적미적하다가 된통 혼이 난 셈이다. `아니 그렇다면, 처음부터 주교라고 밝혔어야지, 이름만 댄다고 겸손한 건가?` 그렇다고 속내를 다 드러낼 수는 없다. "아이고, 예예. 하겠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아니, 하고 싶습니다"하고 말하며 얼굴을 붉혀야 했다.
 
 #지정석에서 벗어나기를

 성당에 지정석이란 없다. 그러나 사실은 지정석이 있다. 다들 성당에 들어가면,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자리에 무의식적으로 앉곤 한다. 만일 누군가 그 자리에 앉아있는 걸 보면, `오늘, 내 자리 뺐겼다`고 생각을 하는 게 불편하지만 진실이다. 피정이나 연수회 때도 마찬가지다. 무심코 처음 앉은 자리가 집에 가는 날까지 계속 내 자리가 된다. 그건 나뿐만이 아닌 것 같다. 왜냐면 내 왼쪽에도, 내 오른쪽에도 항상 같은 사람이 앉기 때문이다.

 복음 선교를 위해 먼 아프리카까지 달려가는데, 심리적으로는 자신의 자리에서 바로 옆 자리로 움직이는 게 아프리카보다 더 먼 듯싶다.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우리는 얼마나 완고한지 좀처럼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에게로 다가왔나 보다. 그것이 성탄인가 보다.

 자야할 때, 하루의 마지막이 컴퓨터 전원을 끄는 것이 아니기를. "아리가또우(ありがとう, 고맙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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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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