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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방글라데시(상) 가진 것 없어 더 행복한 하느님의 도구

김노엘 수녀(한국외방선교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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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글라데시 달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2009년 4월 14일, 드디어 방글라데시에 첫발을 내디뎠다. 나는 스스로 `새해 첫 날에 김노엘이라는 한국 선교수녀가 방글라데시에 새해 선물로 파견됐구나!`하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생각이지만 너무나 덥고, 너무나 더럽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무례할 정도로 뚫어지게 쳐다보는, 이 낯선 나라에 던져진 나 자신에게 어떤 형식으로든 의미를 부여해야 했기 때문이다.


 
▲ 주님께서는 사막에 큰 길을 내시기 위해 나를 방글라데시로 부르셨다.
방글라데시 여성들과 함께.
 
 
#낯선 선교지에서의 첫 위기

 `SMRA`라는 방글라데시 최초이자 최대의 방인수녀회 총원 공동체에 방 하나를 얻어 머물면서 `방글라`(방글라데시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나를 도와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 `기억력을 한탄하며` 갓난아기처럼 열심히 듣기에 매진했다.

 세 달쯤 지나 겨우 내 소개를 할 정도가 됐을 때 유창하게 방글라를 하는 이들의 질문이 들리기 시작했다.

 "뚜미 께? 끼 꼴떼 빠로? 끼 끼 꼴떼칠레?"(너는 누구야? 뭐 할 줄 알아? 어떤 일들을 했었어?)

 아직도 헷갈리는 동사변화를 한꺼번에 모두 써가며 쏟아낸 한 수녀의 질문에 내 속을 헤집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난 누구인가? 무엇을 할 줄 알고 어떤 자격을 갖췄는가?`

 선배 선교사들에게 많이 들었던 선교지에서 첫 번째 위기가 이렇게 닥쳤다. 이 날부터 내 머리는 더 이상 새로운 단어가 입력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내 마음은 이 사람들 약점을 찾아내려고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깨끗한 모습의 한국에 눈높이가 맞춰진 나에게는 `더럽다`는 단어가 부족하게 여겨질 정도로 이 곳의 거리가 더 더럽게 보였다. 이 곳 사람들은 순진무구하게 보이는 맑고 커다란 눈들로 모두 거짓말만 하는 듯 여겨졌다. 치렁치렁 하얀 옷을 입은 남자들은 모두 무뢰한처럼 느껴졌다. 눈만 내놓고 어떤 때는 눈까지도 새까맣게 가린 여자들은 비참하게만 보였다.

 이런 혼돈을 겪으면서도 나에게 던져진 질문에서 도망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수도생활의 습관이 나를 성체 앞에 머물게 했다. 도망가고 싶어서 더 그림책(방글라 교재)에 집중하려는 나를 성체를 향해 돌아앉도록 만드는 그 습관이 싫으면서도 감사했다. 그 몸에 밴 습관이 말했다. "지금이 하느님을 알려고 해야 하는 때야!"

 성체 앞에 앉아 마냥 울었다. 나는 두드러진 재주도, 누군가를 만족시킬 어떤 자격증도, 내세울 만한 경험을 한 것도 없는 사람이었다. 한참 운 후에 성경말씀이 떠올랐다.

 바오로 사도 고백처럼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나이기에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해 일을 하시는 것임을 알아들은 것이다. 마음이 가벼워졌다. 감사한 마음이 들면서 곧 나에게 "너는 누구야?"하고 질문한 수녀에게 기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단지 선교수녀야!"


 
▲ 방글라데시에서 선교사는 기초적인 의학상식을 갖고 의사 역할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장애아 몸 상태를 살피고 있는 필자.
 
 
 
 #주님께서 새 일을 시작하시리라

 하지만 그 수녀는 내 대답을 만족스러워하지 않았다. 그 수녀는 내가 의사나 간호사이길 바랐던 것 같았다. 3개월을 함께 하는 동안 자가치료 경험에 바탕을 둔 의학상식으로 몇몇 수녀님의 아픈 곳을 만져줬는데 효과가 있었던지 자기들끼리 내가 의사나 간호사일 것이라고 추측한 것이었다.

 안 되는 말로 장황한 설명을 하면서 조금씩 말이 느는 것을 느꼈다. 한국 수도자들은 스스로 몸 관리를 하기 위해 웬만한 의학상식은 다 알고, 또 한국인은 조상님들에게 물려받은 가정의학 기초지식이 다 있다고, 아마 당신의 몸이 경험을 하지 못했던 것을 경험해서 나았나 보다고…. 영어와 방글라와 몸짓을 섞어 열심히 설명을 하며 느꼈다. `아! 이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이구나!`

 그래서 이야기했다. "하느님께서 네 기도를 들어주셔서 나은 것이야! 네가 낫고 싶어서 기도를 열심히 한 모양이지?" 수녀는 기뻐했다. 나도 기뻤다.

 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할 수 있을 지를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누구인지 평가해 주시는 분이, 나 자신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분이 말씀해주기 때문이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 정녕 나는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리라" (이사 43,19).내가 할 일은 그분께서 하시는 일을 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후원계좌 : 우리은행 1005-800-966128
               예금주 : 천주교한국외방선교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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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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