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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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방글라데시(중) 순교자의 신앙을 가르쳐 주세요

김노엘 수녀(한국외방선교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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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나즈풀교구장 주교님은 내게 "한국교회의 순교자 정신을 우리 청소년들에게 가르쳐 달라"고 당부하셨다.
주교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필자(왼쪽).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언어연수를 마치고 동료 수녀님들이 활동하고 있는 디나즈풀교구 선교지에 합류했다. 디나즈풀교구는 인도와 맞닿은 최북단 국경지역으로 방글라데시 7개 교구 중 가장 가난한 교구다.

#400년 교회 역사에 비해 신앙이 약해

 막 언어연수를 마치고 합류한 내게 교구장님은 "한국교회는 200년이라는 길지 않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순교자들의 피 위에 세워졌기에 신앙심이 강합니다. 우리는 400년 역사를 갖고 있지만 신앙심이 아주 약합니다. 순교자가 없기 때문인 것 같으니 한국교회 순교자 정신을 우리 청소년들에게 가르쳐 주십시오"하고 당부하셨다.

 그렇게 교구 청소년사목국에서 첫 소임을 맡게 됐다. 교구장님만 따라다니며 그 분이 시키거나 요청하는 대로 했다. 가는 곳마다 부족이 다르고 문화와 언어가 달랐다. 공식언어가 `방글라`지만 부족민들 중 많은 이들이 방글라를 읽지도 쓰지도 못하고, 심지어 말하지도 못했다. 그나마 내가 만난 청소년들은 교육을 받아서 방글라를 잘 했다. 간혹 꽤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청년도 있었다.

 인구의 98가 무슬림인 방글라데시에서 0.2에 불과한 가톨릭교회 청소년들은 열심히 노력하며 신앙을 지키고 있다. 정치ㆍ경제적으로 온갖 차별과 제재를 받으면서도 방학을 이용해 교리를 비롯해 법학, 사회학 등을 공부하며 학년별로 9박 10일 합숙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있었다.

 프로그램 참여는 나 자신과 싸움이었다. 9박 10일 내내 맨 뒷자리에 고집스럽게 앉아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강의를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놀랍게도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방글라가 제법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 한 청년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수녀님, 고향이 어디에요? 몇 살이에요?"
 "수녀에게 고향하고 나이는 묻는 게 아니야."
 "왜요? 우리는 신부님과 수녀님들 고향이랑 나이 다 아는데."
 "한국 수녀에게는 고향하고 나이 묻지 마!"
 "왜요?"
 "한국 신자들은 신부나 수녀한테 나이를 묻지 않아. 큰 실례거든."
 "우리는 서로 다 아는데…. 여기는 방글라데시니까 우리 문화대로 수녀님도 말해야 돼요!"
 "난 한국인이고 또 내가 말해도 넌 모르잖아. 넌 사제나 수도자가 된다는 게 뭐라고 생각하니?"
 "미사 집전하고, 기도하고 그러는 거죠."
 "나는 사제나 수도자가 된다는 건 가족과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하느님만을 위해 살기 위해 따뜻한 가족 품을 떠나고, 자신까지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그런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을 거야."
  "……"

 집요하게 묻던 청년이 입을 다무는 것을 보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짐짓 옳다고 확신하며 내뱉은 말이 오히려 내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알려주는 느낌이었다.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는 것이 오히려 내가 마음으로부터 가족을 떠나지 못하고, 스스로 나이를 의식하며 `…인척`, `…다운`이라는 말의 틀에 갇혀 있는 기분이었다.


 
▲ 방글라데시 청년 신자들은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려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갇혀 있던 틀을 벗고 이웃과 가까이

 그래서 결국 친절하게 모두 알려줬다. 가족 관계를 말해주고 어떻게 살았으며 공부를 어디까지 했는지, 수도생활은 몇 년을 했는지 등 빈틈없는 신상조사에 응해 줬더니 청년은 속내를 털어놨다.

 "처음부터 수녀님을 지켜봤어요. 다른 사람에게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말을 하고 싶어서…."

 그 청년과의 면담은 며칠간 계속됐다. 면담 후 그 청년은 용기를 내 사제를 찾아가 고해성사를 봤고 하느님을 다시 만났다. 그 후 직장도 얻고, 결혼도 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내게 고마워했다.

 방글라데시에서 태어난 아기는 출생과 동시에 이슬람, 그리스도교, 힌두교, 불교, 토속신앙 중 하나로 종교가 결정된다. 마찬가지로 종족이 결정되고 사용할 언어와 문화가 결정된다. 따라서 신자들과 면담하다 보면 대개 어떤 신부의 동생, 삼촌 또는 어느 수녀의 조카, 이모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서로 `모두 안다`고 할 수도 있을 정도다.

 이 청년을 만나게 해주신 하느님께 오랫동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신자들은 자신들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한다. 이 청년은 자신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방글라데시 사제나 수도자에게 할 수 없었던 말을 외국인인 나에게 쏟아내고 나서 평화를 얻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권하는 대로 선교사제를 찾아가 고해성사를 한 후 지금까지 성당에서 큰 일꾼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렇게 난 순교자의 피를 이어받은 한국교회 선교사로서 하느님 심부름을 하는 행복을 누리고 있다.

후원계좌
우리은행 1005-800-966128
예금주 : 천주교한국외방선교수녀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2-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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