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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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방글라데시(하) 나에게 무엇을 바라느냐?

김노엘 수녀(한국외방선교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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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글라데시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며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건기와 우기. 나름대로 뚜렷한 여섯 가지 날씨가 있는 방글라데시에서 3년을 지냈다. 그동안 내 안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한국, 한국교회라는 숲 속에서 살 때는 내 곁에 있는 나무가 얼마나 큰 지, 또 얼마나 많은 종류의 나무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얼마나 큰 나무인지 어떤 종류의 나무인지 알 수 없었다.

 숲을 떠나 밖에서 숲을 들여다보는 상황에 놓인 지금, 조금씩 내 자신의 키와 됨됨이를 알아가고 있다. 내 곁에 있던 나무가 참 큰 나무였고, 숲을 이루고 있던 그 모든 나무들이 종류가 전부 다른 것이란 걸 깨달았다.



 
▲ 필자(오른쪽)와 함께 활동하는 수녀들.
 
 

 #숲 밖으로 나와 숲을 보니

 남의 나라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나라 역사 안에 녹아 있는 민족의 애환과 기쁨의 표현을 배우는 것이다. 배우기 쉽지 않은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들의 말과 글 속에 담긴 고유한 삶과 생각이 한국인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안도감과 `참으로 다르구나`하는 생소함을 번갈아 느끼면서 여러 가지 생각에 빠진다.

 갓난아기와 같은 집중력으로 난생 처음 접하는 언어를 알아들으려 노력하면서 `지금처럼 하느님 말씀과 이웃의 마음을 들으려 했다면 많은 오해를 풀 수 있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사람들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을 수 있었을텐데`하는 생각을 하며 뉘우치기도 했다.

 이곳 사람들은 먹는 음식 종류가 적고 그나마 조리법이 한정적이다. 손으로 밥을 으깨 먹고, 2~3시간 이상 음식을 튀기고 삶아 먹는 이들 문화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며 그동안 숲 속에서 풍성하게 누리면서 감사하기보다는 따지고, 구분하고, 나누고, 가리고, 판단하며 살았다는 생각을 했다.

 1971년 파키스탄에서 독립한 방글라데시는 남한보다는 크고 한반도 보다는 작다. 이 땅에 1억 4000만 명이 모여 산다. 인구의 98가 이슬람교인이고, 인구의 63가 글을 모른다.

 옛날 인도와 한 나라였던 방글라데시에는 힌두교 사고방식이 뿌리 깊게 박혀있다. 방글라데시인들은 신분에 높고 낮음이 있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어 내가 남보다 조금 나은 상황에 있다 싶으면 상대방을 고압적으로 대한다.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돈이 있어도 식당에 좀처럼 들어갈 수 없다. 굶주림과 가난을 신의 보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이곳 사람들은 잘 먹어도, 굶어도, 부자여도, 가난해도 그 의미가 신께 있다고 믿는다. 한때는 행복지수가 세계에서 가장 높았던 나라다.

 나와 함께하는 이들은 사람들 앞, 심지어 부모 앞에서도 당당하지 못하다. 본인 의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 마음대로 말할 수도, 걸을 수도, 눕거나 앉을 수도 없는 사람들, 바로 장애우들이다.

 1년 7개월여를 청소년들과 생활하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교구장님 요청이 곧 하느님 뜻이라고 믿고 순명했던 일이라 어떻게든 잘해보려고 노력했지만 계속 벽에 부딪히며 어려움을 겪었다. 설상가상으로 교구장님이 다른 교구로 옮기셨다.

 짧지 않은 시간을 고민하며 기도했다.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를 강조하셨던 설립자 주교님 말씀을 되뇌며 내가 받은 은혜가 무엇이며 어떻게 감사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길 잃은 슬픔을 씻어주신 그분

 마이맨싱교구에서 활동하시는 떼제공동체 수사님들과 한 달을 함께 지내며 그들 소임을 경험하는 기회가 있었다. 책임자 수사님이 38년 동안 일궈오신 장애우 자활센터에서 생활하며 방글라데시에 온 후 처음으로 소리내어 웃는 나를 발견했다.

 내 안에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활기를 체험했다. 수사님께 장애우들과 함께하고 싶다고 말씀 드렸더니 기뻐하시며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하셨다. 내가 있는 디나즈풀교구에는 장애우를 위한 시설이 없다. 또 장애우들에 대한 부족들 인식은 보수적이고 폐쇄적이다.

 수사님도 38년 전 디나즈풀교구에 센터를 마련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고 했다. 그래서 마이맨싱 지역에서 시작했고 지금은 자리를 잡았다고 하시며 38년간 경험을 나눠 주겠다고 했다.

 찾는 이들과 두드리는 이들에게 응답해 주시는 하느님 사랑을 다시 한 번 체험했다. 심부름을 하러 와서 어떤 심부름을 해야 하는지 목적을 잃어버린 나에게 슬픔을 가시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린다. 그리고 나의 길을 끝까지 달리기 위해 매일 `오늘`이라는 출발선에 선다.
 "나에게 무엇을 바라느냐?"
 "스승님,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후원계좌   우리은행 1005-800-966128
              예금주 : 천주교한국외방선교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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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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