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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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타이완(중) "시오뉘마마"(수녀 엄마)

고민경 수녀(한국외방선교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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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 아이들은 어디에서나 나를 만나면 큰 소리로 인사하며 반가움을 표시한다.
색칠하기 수업을 마치고 `작품`을 자랑하고 있는 아이들과 필자(오른쪽).
 

  "시오뉘마마, 자오안!"(좋은 아침이에요! 수녀엄마)

 매일 아침 7시 30분 성당에 들어서면 어린아이들이 반가운 얼굴로 나를 맞아준다. 지난해 본당 유치원에서 종교수업을 시작하면서 아이들과 얼굴을 익히고 친해졌다. 매일 아침 아이들과 인사를 하며 하루를 즐겁게 시작한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이지만 처음 시작할 때는 원장을 비롯해 교사와 원아들까지 신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도 지금은 교우들 손자와 손녀 두세 명이 다니고 있다.

 종교수업을 하지 않았을 때는 아이들과 조금 서먹서먹했었다. 아이들을 만나면 먼저 "시아오펑이오우, 자오!(친구들, 안녕!)"하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지만 아이들은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아이들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수녀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나 보다. 게다가 말투도 다르니 더 생소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성당, 유치원, 거리를 가리지 않고 나를 보기만 하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인사한다. 교육을 열심히 한 보람이 느껴진다.

 대만 유치원은 연령에 따라 시아오반(3~4살), 쫑반(5살), 따반(6살)으로 나눠서 수업을 한다. 매주 금요일에는 교리수업이 있는데 귀여운 시아오반 아이들은 나보다 말을 더 많이 한다.

 한참 호기심이 많을 때라 질문이 쏟아진다. 그럴 때마다 빨리 대답을 못해줘 내 얼굴은 홍당무처럼 변하고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쫑반과 따반 어린이들은 교리교육이 비교적 수월하다. 말귀도 제법 알아듣고 질문에 대답도 잘 한다. 예수 성탄 대축일과 졸업 전 7월에 재롱잔치를 연다. 성탄절 재롱잔치 때는 함께 계신 수녀님들이 아이들에게 춤과 노래 솜씨를 선보인 적도 있다.

 토요일은 빠과부락이 있는 산에 오르는 날이다. 빠과부락은 본당 관할 구역 내 7개 부락 중 생활형편이 좀 어려운 이들이 많다. 또 아이들도 많다. 이곳 신자들은 교통편이 여의치 않아 산에서 잘 내려오지 않기에 나는 토요일마다 한국인 부주임 신부님과 함께 간식거리와 교리자료를 챙겨들고 산에 올라간다.

 병자 영성체를 하거나 아이들을 만나러 구불구불한 산길을 운전하며 갈 때는 늘 마음이 즐겁다. 여느 주일학교처럼 신부님 기타 연주에 맞춰 아이들과 즐겁게 성가도 부르고 성경내용을 바탕으로 한 그림 그리기, 교리교육 등을 하며 아이들에게 신앙심을 불어 넣어주고 있다.

 이 부락에는 모임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서 아이들 집이나 민박영업을 하는 교우집을 빌려 교리교육을 한다. 그래도 아이들은 마냥 즐거워한다.

 산에서 지내는 아이들이라 그런지 조금은 거칠다. 부모 없이 할머니 손에서 크는 아이들도 있다. 그 아이들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도 공부를 도와줄 가족이 없다. 가끔 거칠고 반항적인 모습을 보이는 아이도 있지만 마음만은 따뜻하다.

 가정방문을 하면 아이와 어르신만 살고 있는 집이 많다. 그나마 어르신들은 대부분 편찮아서 활동을 할 수 없다. 이 아이들이 신앙 안에서 잘 성장할 수 있는 작은 밑거름이 돼주려 노력하고 있다.


 
▲ 아이들의 간식시간.
 

 지난 성탄절 때 아이들 행동에 속이 상해서 아이들을 보고 싶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부주임 신부님이 산에 사는 아이들을 데려오기로 하고 나는 아이들에게 나눠줄 선물을 준비했다. 미사를 마치고 밥을 먹고, 재롱잔치까지 마친 후 집에 돌아갈 때 선물을 나눠줬다. 아이들이 음식과 물건에 욕심을 많이 내는 편이어서 한 명 한 명에게 공평하게 선물을 줬다.

 그런데 먼저 선물은 받은 아이들이 마음에 안 든다고 바꾸어 달라는 것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옆 친구와 바꾸라고 했더니 한 아이가 내게 오더니 해서는 안 될 나쁜 행동을 했다.

 순간적으로 화를 참지 못하고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며 "너를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다른 아이들에게도 선물이 맘에 들지 않으면 다시 선물상자에 담으라고 말했다. 선물을 도로 내려놓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그 일이 있은 후 한참 동안 산에 올라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성당 마당에서 세차를 하고 있을 때 나쁜 행동을 했던 아이의 형제ㆍ자매들이 지나가다 나를 보고는 반가운 목소리로 "안녕, 수녀님!"하고 인사를 했다. 또 "수녀님이 많이 보고 싶다"면서 "언제 산에 올 거냐"고 물었다.

 해맑은 얼굴로 인사를 하는 그 아이들 모습을 보면서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아이들은 속 좁은 수녀가 화낸 것은 모두 잊고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 큰 어른은 몇 달 전 있었던 속상한 일을 계속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다. 그날 `내일은 아이들을 보러 올라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후원계좌 : 국민은행 945201-01-126302
               예금주 : (재)천주교한국외방선교수녀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2-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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