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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뿌리 약해져 흔들리는 유럽… 신앙 회복만이 진정한 희망

미니기획 유럽의 정체성 회복? 「유럽 교회」를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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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2003년 권고 「유럽 교회」를 통해 유럽 사회가 그리스도교 신앙에 뿌리를 둔 ‘개방과 수용’의 정체성을 발전시켜나갈 것을 간곡히 당부했다. 【CNS 자료 사진】





이탈리아의 마태오 살비니 내무장관이 최근 공공기관에 십자가를 의무적으로 다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이탈리아의 가톨릭 정체성을 지키자는 이유에서다.

가톨릭 전통이 뿌리 깊은 독일 남부 바이에른에서도 마르쿠스 죄더 주(州) 총리가 나서서 공공건물 십자가 달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는 “십자가는 바이에른과 독일의 법적, 사회적 질서의 기본 가치에 대한 고백”이라고 말했다.

유럽 지도자들이 그리스도교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나선 것은 반가운 일이다. 특히 독일은 종교 자유 침해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공립학교 교실에서 십자가를 모두 떼어낸(1995년 연방헌법재판소 칼스루에 판결) 터라 더 이목을 끈다.

하지만 눈 밝은 교회 인사들은 이들의 구호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본다. 이탈리아의 경우 극우 민족주의 정서에 호소해 무슬림 난민 수용 거부의 명분을 쌓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살비니는 반(反) 난민 정책을 펴는 극우동맹당 소속이다. 바이에른 주 총리는 보수화하는 사회 분위기에 편승해 보수 지지층 결집을 꾀하는 기독사회당에 속해 있다. 십자가가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성직자들은 우려한다.

로마에서 발행되는 예수회 잡지 ‘치빌타 가톨리카’의 편집장 스파다로 신부의 트위터 논평에 그런 우려가 담겨 있다. “(정치인들은 십자가에) 손대지 마라. 십자가는 악과 폭력, 불의와 죽음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지 정체성을 보여주는 표시가 아니다. 십자가는 원수에 대한 사랑과 조건 없는 환대를 외친다.”

유럽의 정체성과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교황 문헌이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유럽 교회(Ecclesia in Europa)」(2003년)이다. 제2차 유럽 주교대의원회의 후속으로 발표된 이 문헌에는 신앙 유산을 잃어가는 유럽 사회를 바라보는 교황의 안타까운 심정과 아울러 정체성 회복에 대한 사도적 충고가 들어 있다.

유럽과 그리스도교 신앙은 떼려야 뗄 수 없다. 가톨릭 역사학자 힐레어 벨록(1870~1953)의 명언대로 “신앙은 유럽이고, 유럽은 신앙이다.” 하지만 근대 계몽주의 시대부터 신앙을 서서히 잃어가더니 현대 사회 들어 종교적 무관심과 무신론에 빠져들었다. 교황은 이를 두고 “역사가 맡긴 세습 자산을 탕진해 버린 상속인들처럼 영적인 뿌리 없이 살고 있다”(7항)고 질타했다. 유럽연합(EU)은 2004년 헌법을 확정할 때도 논란을 거듭하다 ‘그리스도교의(Christian)’라는 단어를 유럽 정신을 기술하는 대목에서 결국 빼버렸다.

유럽인들이 불안과 공허, 삶의 의미 상실에 흔들리는 것은 근본적으로 영적 뿌리가 약해진 데서 비롯된 문제라는 게 교황의 진단이다. 날이 갈수록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사회적 연대가 약해지는 것도 하느님을 배제한 채 이성의 힘만으로 사회를 건설하려는 세속주의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문헌의 핵심은 “모든 희망의 원천이신 그리스도께 되돌아가라”는 권고다. 교황은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야말로 유럽 대륙의 진정한 희망의 전령”(19항)이라며 신앙의 회복을 간곡히 호소했다.

하지만 교황이 조언하는 유럽의 정체성 회복은 반 난민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공공건물에 십자가를 다는 것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과거 유럽을 전쟁의 비극으로 몰아넣은 극단적 민족주의 재건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교황은 유럽의 정체성을 ‘개방과 수용’으로 꼽았다.

“유럽이라는 말은 ‘개방’이라는 말과 동의어가 되어야 합니다. 유럽 역사 자체는 유럽이 실제로 폐쇄되거나 고립된 지역이 아니기를 요구합니다. 유럽은 해외로 뻗어 나가 다른 민족과 다른 문화, 다른 문명과 접촉함으로써 건설됐습니다. 그러므로 유럽은 개방적이고 수용적인 대륙이 되어야 하며…”(111항)

교황은 이어 “다른 민족에 대한 열린 태도와 연대를 통해 정체성을 확립하라”(112항)고 촉구했다. 유럽 지도자들은 「유럽 교회」를 다시 읽어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대(對) 유럽 메시지도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교황은 2년 전 독일에서 열린 한 국제모임에 보낸 메시지에서 “다른 민족에게 벽을 쌓는 것은 유럽의 정신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또 “거대한 자산(그리스도교 전통)이 박물관 유물인지, 아니면 문화에 영감을 주고 전 인류에게 내어줄 수 있는 보물인지 깊이 생각하라”고 권했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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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8-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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