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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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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칼럼] 혁명을 꿈꾼다, ‘사랑의 혁명’을

김원철 바오로(보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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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형마트에서 어린 아들과 먹을 것을 훔치다 붙잡힌 30대 실직 가장에게 온정이 물밀듯 답지한 훈훈한 뉴스가 세밑의 움츠러든 마음을 풀어줬다.

마트 주인은 “너무 배가 고파서 그랬다”고 울먹이는 장발장 부자(夫子)를 용서해줬다. 그러자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요즘 세상에 밥 굶는 사람이 어딨습니까”라며 그들을 가까운 식당에 데려가 국밥을 사 먹였다. 이 광경을 지켜본 한 남성은 현금 인출기로 달려가 20만 원을 뽑아서 식당까지 찾아가 건넸다. 이 소식을 들은 시민들도 이런저런 방법으로 선행 릴레이에 동참했다.

릴레이 참여자들의 선행은 연민(Compassion)의 발로다. 연민은 ‘동정심’ 혹은 ‘가엾은 마음’으로 바꿔 말할 수 있다. 연민은 값싼 동정과는 거리가 멀다. 무관심의 반대어이기도 하다. 베풀고 싶은 마음을 샘솟게 하는 게 연민이다.

세상의 재화는 나날이 불어나는데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가난한 사람은 계속 쏟아져 나온다. 그들의 절망 섞인 한숨은 땅을 꺼뜨릴 정도다. 부와 가난은 매우 어려운 문제다. 4차 산업혁명의 인공지능(AI)도 이 문제만큼은 속 시원히 답을 내놓지 못할 것이다.

이 문제를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부(소유)의 균등분배를 섣불리 선동하면 걷잡을 수 없는 희생을 부른다. 지난 세기에 공산 사회주의 혁명의 환호성과 실패에서 그 오류를 목격했다. 그런 일차원적 방법은 답이 아니다. 부자와 가난한 자 없이 모두 균등하게 소유하고 평등하게 사는 사회는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에나 나오는 얘기다.

그렇다고 자유롭게 경쟁해서 능력껏 먹고살자고 하면 더 큰 모순에 부닥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사자와 토끼가 한 우리에서 생존 경쟁을 벌이는 꼴인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의 불합리성 때문에 지독한 갈등을 겪고 있다. 역사를 돌아보라. 세상을 뒤흔든 혁명의 원리와 전통은 거창하지 않았다. 마냥 잡아먹히는 동족을 더는 보고 있을 수 없어 토끼들이 들고 일어난 게 혁명이다. 대부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들이 모순의 뇌관을 때렸다.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된 사회·경제적 모순과 그로 인한 갈등은 임계점을 넘는 순간 파열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두어 달 전 제3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담화에서 프리모 마촐라리(Primo Mazzolari) 신부의 말을 인용해 이에 대한 위험을 경고했다. “가난한 이들은 우리의 불의에 맞서 끊임없이 저항합니다. 가난한 이들은 화약통입니다. 불이 붙으면 세상은 폭발할 것입니다.”

해법은 복음 속에 있다. 부자와 가난한 자가 공존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부자는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라도 주린 배를 채우려고 문 앞에서 기다리는 라자로(루카 16,19-31 참조)를 외면하면 안 된다. 배고픈 사람, 목마른 사람, 헐벗은 사람들 속에서 주님의 얼굴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해법이 보인다. 마트 주인과 경찰처럼 가난한 이들을 연민하면서 가진 것을 조금씩 내어줘야만 함께 잘 살 수 있다. 식자들은 이를 ‘공생공락의 가난’이라고 정의한다.

나눔과 선행 릴레이가 이어져 ‘사랑의 혁명’이 일어나는 2020년을 꿈꾼다. 그 혁명만이 평화롭고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든다. 먹을 것, 입을 것, 몸 뉘일 곳은 절대 부족하지 않다. 탐욕을 채우려니까 부족한 것이다. 새 달력을 벽에 걸면서 이 말씀을 되뇐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마르 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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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12-26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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