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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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포로가 된 사형수

[월간 꿈 CUM] 삶의 길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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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V


신학생 때 ‘카리타스’(Caritas, 사랑)라는 이름의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한 일이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외출 시간을 이용해 교도소에 가서 교리를 가르치고 성경 말씀을 나누기도 하는 그런 모임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교도소에서 만난 사람들 가운데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사형수가 있습니다. 세례명은 베드로입니다.

처음에 베드로 형제님이 천주교를 신앙으로 선택한 것은 아주 단순한 이유에서였습니다.

죽어서 지옥에 가자니 조금은 두렵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답니다. 베드로 형제님은 사람을 살해한 흉악범죄자가 천당에 간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종교와 달리 천주교에서는 천당도 지옥도 아닌 곳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바로 ‘연옥’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형제님은 ‘잘 하면 연옥에라도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에서 천주교를 선택했다고 했습니다.

베드로 형제님이 천주교를 선택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성경’ 때문이었습니다.

평소 담배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베드로 형제님은 늘 작업시간에 담배꽁초를 모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담뱃가루를 남몰래 모으기는 했지만 담배를 말아 피울 부드러운 종이가 필요했습니다. 베드로 형제님 말에 따르면, 제가 매일 읽어보라고 주었던 성경책은 기막힐 정도로 부드럽고 재질이 좋았다고 합니다. 담배를 말아 피우기엔 정말이지 안성맞춤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 형제님에게도 일말의 양심은 있었나 봅니다. 하느님 말씀이 적힌 성경책을 찢어 담배를 말아 피울 때마다 하느님께 죄송스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 형제님은 성경책을 찢기 전에 죄송한 마음으로 성경 말씀을 열심히 읽었다고 했습니다. 특히 신약성경 복음서에 나오는 ‘되찾은 아들’의 비유 말씀(루카 15,11-32)을 읽고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 그리고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사형선고를 받고 뒤늦게야 하느님을 알고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베드로 형제님은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적개심만 잔뜩 품고 있었던 그가 상냥해지고 친절해졌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정으로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회개하면서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용서와 자비를 믿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형제님은 드디어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고 세례성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늘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OSV


‘주님, 감사합니다! 저에게 베풀어주신 자비와 용서, 진정으로 감사드립니다.’

천주교를 선택한 이유야 어떻든 베드로 형제님은 참으로 탁월한 선택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세례를 받은 뒤 베드로 형제님은 새로운 삶, 참으로 기쁜 삶을 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난날의 잘못을 진정으로 뉘우치고 회개함으로써 하느님의 이름으로 용서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기쁨과 영광을 누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베드로 형제님이 말아 피운 것은 담뱃가루였는지 아니면 하느님의 말씀이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누가 과연 하느님 앞에서 전혀 죄짓지 않고 깨끗하게 살았노라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 앞에서 그 누가 자신은 의로운 사람이라고 내세울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 앞에서 전혀 죄짓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조금도 부끄럽지 않고 떳떳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죄를 지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자신이 지은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통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빨리 하느님 아버지의 품 안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글 _ 이창영 신부 (바오로, 대구대교구 대구가톨릭요양원 원장, 월간 꿈CUM 고문)
1991년 사제 수품. 이탈리아 로마 라테란대학교 대학원에서 윤리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교회의 사무국장과 매일신문사 사장, 가톨릭신문사 사장, 대구대교구 경산본당, 만촌1동본당 주임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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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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