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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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하지 말고 존중해야 할 이유

[월간 꿈 CUM] 지금 _ 나와 너 그리고 우리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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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신부님들과 저녁 식사를 하는 중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 신부님이 자기 동창이 신학교 면접 볼 때 있었던 일이라고 하면서 한 가지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그 동창이 신학교에 입학시험을 치른 후 면접을 볼 때의 일이다. 면접관 신부님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셨다. “자네는 어떻게 신학교를 오게 됐나?” 그러자 그 동창은 이렇게 대답했다. “안양에서 전철 타고 수원역으로 와서, 수원역에서 00번 버스 타고 왔습니다.”

함께 식사를 하던 신부님들이 배꼽을 잡으며 박장대소를 하던 차에, 그 옆에 계신 신부님도 이에 질세라 한마디 거들었다.

자신도 신학교에서 어떤 교수 신부님의 질문에 잘못 대답을 해서 큰 곤욕을 치렀었다는 이야기였다. 이 신부님이 학부 신학생이었던 어느 날 강의를 하시는 신부님의 말씀이 너무 자장가처럼 들려서 정신없이 졸고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교수 신부님이 졸고 있는 자신 앞으로 다가와서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언성을 높이면서) 자네 어젯밤에 도대체 뭐했나?” 그랬더니 깜짝 놀라 잠이 깬 신학생은 엉겁결에 눈을 껌뻑이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잠잤는데요??”

이 대답이 어찌나 웃기던지 교실은 그야말로 웃음바다로 변해버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 상황에 웃지 않은 유일한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분은 바로 질문을 던진 교수 신부님 자신이었다. 자기가 던진 질문에 농을 섞어 말한 신학생의 답변에 심히 당황하셨던 것이다. 그날 이후로 이 신학생은 말 그대로 그 교수 신부님에게 찍혀서 신학교 생활이 고달팠다고 한다.

거의 대부분 이런 실수는 대화의 내용이 어떤 배경에서 생겨났는지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예를 들어 “잘~ 한다”는 말은 말 그대로 칭찬하고 격려하는 말일 수 있다. 하지만 어투나 음색이 비꼬는 듯하거나, 잘못이나 실수를 한 상황에서 이 말을 듣게 된다면 오히려 반대의 의미가 된다.

면접 상황에서 어떻게 신학교를 왔냐는 질문은 신학교에 뭐 타고 왔느냐란 질문이 아니라 어떤 동기로 신학교에 지원했느냐는 말이었다. 수업시간에 졸고 있었던 상황에서 어젯밤 뭐했느냐는 질문은 밤에 무슨 일을 했는지를 묻는 게 아니라 졸지 말라는 훈육의 말이었다.

이 에피소드에 등장한 신학생 중 한 명은 면접 상황에서 긴장을 했기 때문에,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졸다가 정신을 차린 직후였기 때문에, 상대의 질문에 대한 배경과 상황을 놓쳐버렸을 것이다. 그 결과로 본의 아니게 사오정이 되어 주변인을 재미있게 해주는 결과를 낳았다. 이처럼 인간의 말은 그 말이 나오게 된 배경과 상황을 충분히 알고 있어야만 비로소 온전히 이해된다. 즉 말의 진정한 의미는 그 말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의 배경과 상황의 상호작용 안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굳이 의사소통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의 모든 행동도 결국 같은 맥락을 지니고 있다. 즉 진정으로 한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행동이 발생한 배경과 상황을 충분히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타인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온전히 알지 못한다. 따라서 한 사람의 배경과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 사람의 행동을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남을 판단하지 말아라. 그러면 너희도 판단받지 않을 것이다”(마태 7,1)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무조건 남을 판단하지 말라는 정언적 말씀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배경과 상황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는 인간 지성의 한계를 충분히 깨달으라는 말씀으로 들린다. 인간은 타인을 판단할 자격이 없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더 본질적으로는 능력이 없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인간은 서로에게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 존중의 대상이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글 _ 박현민 신부 (베드로,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사목 상담 심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상담심리학회, 한국상담전문가연합회에서 각각 상담 심리 전문가(상담 심리사 1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일상생활과 신앙생활이 분리되지 않고 통합되는 전인적인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현재 성필립보생태마을에서 상담자의 복음화, 상담의 복음화, 상담을 통한 복음화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 「상담의 지혜」, 역서로 「부부를 위한 심리 치료 계획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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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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