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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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음 불가-지규야 미안해

[월간 꿈 CUM] 말씀과 함께 희로애락(喜怒哀樂)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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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필자가 당진성당에 부임하고 나서 조금 특이하게 생각했던 것 중 하나는, ‘아이들이 왜 이렇게 노래를 못 부르지?’였다. 음정과 박자의 문제를 차치하고, 우선 아이들이 소화할 수 있는 음역대가 필자가 만나온 아이들과 비교해 너무 낮았다.

“즐겁게 노는 어린이처럼~♪” 한국천주교회 안에서 어린이 미사의 역사와 함께한 ‘어린이처럼’ 성가를 예로 들자면 이렇다. “솔솔파 미솔 라도도라도~♪”로 불러야 원곡이지만, 우리 아이들은 “솔솔파 미솔 라라라라라”로 부른다. 일반적인 도레미파솔라시도의 ‘시’(B) 음도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미사 때마다 모 개그맨이 진행하는 ‘고음 불가’를 보는 것 같다. 처음엔 웃기기라도 했지, 이젠 슬프기까지 할 정도다.

그러던 어느 날, 환기를 위해 사제관 모든 창문을 한참 열어놓고 나서 경악을 한 적이 있다. 대로변에 인접한 집에서나 보는 검은색 분진이 온 사제관을 뒤덮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제관은 고지대에 위치해 자연과 가까운데, 웬 검은 분진일까? 나는 그럼 이것들을 다 흡입하고 있었단 말인가!!?? 나는 곧장 휴대폰을 들고 미세먼지가 얼마나 되나 검색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미세먼지든 초미세먼지든 내가 사는 지역이 전국 최고라 나온다. 슬픈 유레카를 외치며 혼자 생각했다. ‘아, 아이들이 높은음을 못 불렀던 이유가 환경 때문이었구나!’

9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우리 또래는, 노래방에서 놀 때 발라드를 주로 불렀다. 우리나라 가요뿐만 아니라 스틸 하트의 ‘쉬즈 곤’같은 유명한 높은 노래들도 즐겨 부르곤 했다(다 올라가든 말든). 그런데 오늘날 아이들이 랩을 좋아하는 것도, ‘1옥타브도 소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다. 하긴, 유난히 기침이 많이 나오고 가래가 끓는 이곳 공기에서 무슨 발성이 되랴! 화력 발전소 4기에, 제철소에, 인접한 중국에는 더 어마어마한 공장들이 즐비한 이곳의 공기가 우리 아이들이 ‘어린이처럼’도 못 부르게 한 것이 아닐까? 이런 깨달음을 얻은 뒤엔, 나는 음이 높이 올라가지 않는 아이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메시지를 건넨다. “음, 너희가 노래를 못하는 게 아니야. 이게 다 환경 때문이란다.” 이 위로의 말 때문인지, 음정도 박자도 맞추지 못 하는 아이들이 성가대에 들어오고 싶다고 난리다.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반포하신 후, 우리 천주교에서도 많은 변화가 일었다. 각 교구에서는 그동안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환경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해왔다. 또 이를 개선하기 위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사목적인 방향도 모색하며 창조주께서 마련해주신 ‘공동의 집’을 보존하기 위해 애써왔다. 하지만 교회 공동체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각 개인에게 와닿는 사태의 심각성이나 실천의 지속성은 부족한 느낌이다. 당장 나부터도 그랬으니 말이다.

아이들이 미사 때 부르는 성가조차도 힘겨워할수록, 지난날 지구에게 했던 몹쓸 행동들이 스쳐 지나갔다. 예전엔 전혀 개연성이 없다고 느꼈을 ‘고음 불가’와 ‘환경을 생각하지 않았던 습관’이 지난 사제연수 이후로 큰 연결고리가 보이는 것 같다. 그만큼 지구는 엄청난 아픔에 시달리고 있다. 당연한 듯 틀어왔던 냉방기기들, 생활 속에서 간단한 것조차 실천하지 못한 절전 습관들, 스마트(smart)에 취해 필요보다 더 좋은 성능으로 바꾼 전자기기들, 짧은 거리조차 차를 타고 이동했던 습관들, 무분별하게 소비했던 지난 나의 잘못들도 분명 한몫했으리라. 물론 ‘공동의 집’인 지구에 가한 책임은 ‘차등적’일 테지만, 나와 같은 개인의 무분별하고 무절제한 소비 행태가 모여 환경을 파괴하는 거대한 공룡을 탄생시킨 것이 분명하다. 수요가 있어야 공급이 따라주는 거니까 말이다. 특별히 우리나라는 ‘기후 행동 추적’(Climate Action Tracker)이라는 분석기관이 지목한 세계 4대 ‘기후 악당 국가’란다. 아무 생각 없이 소비주의에 젖어 살았던 너도나도 모두 악당이었다!

반대로, 우리의 노력이 한데 모여 거대한 공룡을 바꾼다면 어떻게 될까? 개개인의 무분별한 소비가 적어지고, 너도나도 탄소중립을 향해 작은 불편함을 감내한다면? 그것이 바로 생태적 회개이고, 지금껏 상처 준 지구에게 내미는 우리의 따듯한 손길이 될 것이다.

‘어린이처럼’도 못 부르던 아이들이 갑자기 꾀꼬리같은 목소리로 ‘Think of me’(오페라의 유령)같은 노래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어린이 성가책에 수록된 곡은 부를 날을 고대하며 근처 마트에 걸어서 다녀와야겠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창세 1,31)
 


글 _ 김용우 신부 (베드로, 대전교구 당진본당 보좌) 
삽화 _ 김 사무엘
경희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했다. 건축 디자이너이며, 동시에 제주 아마추어 미술인 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주 중문. 강정. 삼양 등지에서 수채화 위주의 그림을 가르치고 있으며, 현재 건축 인테리어 회사인 Design SAM의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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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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