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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주 콤플렉스(savior complex)

[월간 꿈 CUM] 꿈CUM 신앙칼럼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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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가 휜다. 짐을 벗어 던지고 싶어도 어쩔 수 없다. 그냥 턱턱 안겨주는데, 받지 않을 도리가 없다. 요즘 우리…. 무거운 콤플렉스 덩어리 3~4개씩 잔뜩 안고 살아간다.

부모 사랑을 차지하기 위한 형제의 심리적 갈등이나 적대감을 의미하는 카인 콤플렉스, 늙지 않으려는 피터팬 콤플렉스,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는 보헤미안 콤플렉스. 여기에 신데렐라 콤플렉스, 외모 콤플렉스, 학력 콤플렉스까지. 우리를 포위 압박하고 있는 콤플렉스의 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데 왕 중의 왕, 콤플렉스 중의 콤플렉스가 있다. 모든 콤플렉스의 뿌리를 찾아 가다보면 어쩌면 이 콤플렉스에 닿을지도 모른다. ‘구세주 콤플렉스’가 그것이다. “이 일은 내가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어.” “너는 틀려, 내 생각대로 해!” 등의 심리가 구세주 콤플렉스의 전형이다. 내가 옳다고? 내가 최고라고?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나마 몇 개 안다고 자부하는 것도 대부분 잘못된 지식과 판단에 근거하고  있다.

인간은 뇌의 능력 중 10 정도만 사용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틀렸다. 놀고 있는 90의 뇌는 없다. 0.1의 뇌 손상만으로도 인간은 중풍, 우울증 등 질병을 앓을 수 있다. 화를 참기보다 터뜨리는 것이 낫다는 것도 틀렸다. 최근 심리학은 화가 날 때 그대로 밖으로 표출하는 것은 오히려 공격적 성향을 키운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들의 앎이 부정확하다면, 그 앎에 근거해 나와 타인의 삶을 재단하는 일은 과연 어떤 정당성을 지닐까.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이 과연 옳은가.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William Hawking, 1942~2018)은 “지식의 가장 큰 적은 무지가 아니라 안다는 환상”이라고 했다.

15세기 철학자 쿠자누스(Nicolaus Cusanus, 1401~1464) 추기경은 ‘무지(無知)의 지(知)’를 말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 이것이 진정으로 아는 것이다. 우리가 나약하고 무지하다는 것을 알 때, 우리는 진정으로 알게 된다. 오만함의 바벨탑을 무너뜨려야 한다.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래야 높은 곳이 보인다. 그렇게 저 높은 곳에서 찬란히 빛나고 있는 신비를 바라보고 걸어가면 된다. “내가 옳아”는 옳지 않다. 구세주 콤플렉스다. “네가 옳아”도 옳지 않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다. “저 아름다운 땅을 향해 우리 모두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가자”가 옳다. 해답은 묵묵히 함께 걷는 ‘행위’에 있다.

구세주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사람들은 ‘호산나’를 외치며 환호했다. 나귀에게 환호한 것이 아니다. 나귀는 들뜰 필요 없다. 구세주를 등에 태운 나귀는 스스로 할 일만 묵묵히 하면 된다. 구세주를 모시고 함께 한발 한발 천천히 걸어가면 된다. 


글 _ 우광호 발행인
원주교구 출신.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1994년부터 가톨릭 언론에 몸담아 가톨릭평화방송·가톨릭평화신문 기자와 가톨릭신문 취재부장, 월간 가톨릭 비타꼰 편집장 및 주간을 지냈다. 저서로 「유대인 이야기」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성당평전」, 엮은 책으로 「경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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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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