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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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람의 영성

[월간 꿈 CUM] 지금 _ 나와 너 그리고 우리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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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후반의 마리아 자매는 두 아들과 딸을 최선을 다해 키워왔다. 그런데 마리아 자매는 자녀들이 자신을 무시하고 상처를 주는 현실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마리아는 세 자녀를 최선을 다해 교육시켰고, 극진한 사랑으로 돌보았다. 그 결과 아들과 딸 모두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서 지위와 명예를 얻으며 성공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세 자녀가 자신을 대하는 말투나 행동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전화 통화를 하는 중에 아무것도 아닌 일로 자신에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는 아이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심지어 물건을 부수는 등 폭력을 마다하지 않는 자녀들로부터 상처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사회적 지위가 있는 자녀들이라 어디에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의 결과가 차디찬 자녀들의 냉소와 비난으로 돌아온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너무 큰 사랑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마리아 자매는 지나친 사랑, 혹은 과도한 사랑이란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사랑은 그 어떤 것보다 우선하는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랑이 너무 지나칠 때 자식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란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모자라서 문제가 되는 것이지, 넘치는 것이 어찌 문제가 되겠는가? 마리아 자매에게 있어서 부모가 너무 간섭하고 잔소리한다는 아이들의 항변은 모두 사랑에 겨워서 호들갑 떠는 것에 불과했다. 배부르니까 고마운 줄 모르고 칭얼대는 철부지들의 하소연일 뿐이었다.

마리아 자매는 자녀들이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실천해 왔던 것에 가장 큰 문제가 있었다. 아이들이 원하지 않아도 남들이 봐서 부러워할 옷이면 억지로라도 입혀 학교에 보냈다. 몸에 좋다는 약은 아이들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로라도 먹였으며, 누가 좋다고 하는 것이면 무조건 아이들에게 강요하였다. 이때 아이들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다.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루카 11,11-12)는 말씀대로 실천하면서 모든 것은 다 아이들을 위한 사랑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도 넘치면 분명 문제가 된다. 사실 엄밀히 말해서 넘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자기가 주고 싶다고 베푸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받고 싶은 것을 나누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기적 사랑 혹은 폭력적 사랑이란 말이 바로 여기서 생겨난다. 어떤 사람들은 부정적 의미를 지닌 이기심이나 폭력이 긍정적 의미를 지닌 사랑이란 단어와 합쳐지면 어떤 뜻을 가지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마리아 자매도 그랬다. 마리아 자매에게 사랑이란 무조건 좋은 것이었다. 따라서 ‘이기적 사랑’이란 말은 ‘나쁜 좋은 것’과 같은 표현처럼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이었다. 이런 사람들은 ‘세속적인 영성’ ‘인간적인 신성함’ 혹은 ‘불완전함의 영성’ 같은 용어 역시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것은 심리적이며 영성적인 건강과 성숙을 위해 무척 중요한 개념이다.

‘모자람의 영성’이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지나치거나 넘치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하면서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는 삶의 태도를 의미한다. 이 영성은 완전함에 대한 강박을 벗어버리고 인간의 한계와 유한함을 인정하고 수용한다. 이때 모자라는 부분은 자신이 아닌 하느님 혹은 이웃의 도움으로 채워질 수 있다.

마리아 자매는 심리적으로 완벽주의에 대한 강박이 있었다. 이것이 자식에 대한 사랑과 연결되어 완전한 사랑에 대한 강박을 낳게 되었다. 무엇보다 문제는 바로 그 완전한(?) 사랑 때문에 오히려 자식들과 멀어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마리아 자매가 만일 자식들을 조금만 덜(?) 사랑했다면, 아마 그 여지만큼 자녀들이 그 사랑을 완벽하게 채워놓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비록 자신은 충분한 사랑을 하지 못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자식은 어머니가 자신을 인격적으로 존중해주면서 온전한 희생과 사랑으로 키워주셨다고 말할지 모른다. 갑자기 유행가의 한 소절이 생각난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어느 누가 쉽다고 했나~.” 
 


글 _ 박현민 신부 (베드로,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사목 상담 심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상담심리학회, 한국상담전문가연합회에서 각각 상담 심리 전문가(상담 심리사 1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일상생활과 신앙생활이 분리되지 않고 통합되는 전인적인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현재 성필립보생태마을에서 상담자의 복음화, 상담의 복음화, 상담을 통한 복음화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 「상담의 지혜」, 역서로 「부부를 위한 심리 치료 계획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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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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