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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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기켄, 손 안에 있다.

[월간 꿈 CUM] 전대섭의 공감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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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르 1,15)에서 ‘가까이 왔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엥기켄’은 ‘손 안에 있다. 손 닿는 곳에 있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머지않아 도래할 어떤 ‘실재’라고들 생각합니다. 초대교회 사람들도 그 시기가 언제일까 궁금해했고, 자기들 세대가 다 가기 전에 하느님 나라가 오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때(시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어디선가, 언제부터 ‘짠~’하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손 안에’ 이미 와 있는 것입니다. 엥기켄, 즉 ‘손 닿는 곳에’ 있다고 했으니 바로 내가 하느님 나라요 이웃이 하느님 나라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요한 17, 2 1) 는 성경말씀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요. 누구도 하느님 나라를 본 적도 경험한 적도 없는데, 예수님은 그런 하느님 나라가 ‘너희 가운데’ 있다고 하십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영(성령)을 지녔기에 그 자체로 하느님과 한 생명입니다. 인간 심연에 새겨진 하느님의 영을 자각하고 깨어있어야 합니다. 스스로 하느님과 한 생명임을 고백할 때 우리는 하느님 안에 있고, 하느님은 우리 안에 계십니다. 하느님이 계신 곳, 우리가 하느님과 하나 되는 곳, 바로 그곳이 하느님 나라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관한 교회의 비유 가운데 ‘이미(already), 그러나 아직(not yet)’이라는 말도 유명합니다. 하느님 나라의 종말론적 완성을 표현하지만, 저는 ‘이미’ ‘손 닿는 곳에’ 와 있는 하느님 나라에 주목합니다.

하느님이 계신 곳, 하느님과 우리가 하나가 되는 곳, 성령을 통해 하느님과 한 생명임이 드러나는 곳인 하느님 나라의 속성은 사랑입니다. 자비입니다. 연민입니다. 연대와 일치입니다. 영혼의 지성소에 있는 하느님 나라는 이처럼 개별적이면서 공동체적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을 닮은, 하느님과 하나된 영혼들이 만들어 가야할 세상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고 말씀하십니다. 손 닿는 곳에 이미 와 있는 하느님 나라의 진면목은 예수님의 삶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그 모습을 봅니다. 그 사랑이, 자비가 연민이 복음입니다. 복음은 그저 말씀이 아니라 행동과 실천입니다. ‘복음을 믿어라’라는 말씀은 본 대로 들은 대로 행하라는 준엄한 명령이기도 합니다.


글 _ 전대섭 (바오로, 전 가톨릭신문 편집국장)
가톨릭신문에서 편집국장, 취재부장, 편집부장을 역임했다. 대학에서는 철학과 신학을 배웠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바보’라는 뜻의 ‘여기치’(如己癡)를 모토로 삼고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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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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