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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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주인 마음, 그게 구례 마음!

[월간 꿈 CUM] 정지아의 구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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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는 언니 -이 ‘아는’의 과정이 참으로 복잡하고 수상하다. 언니는 엄마 전남편의 친척이다. 엄마의 전남편은 1950년 낙동강에서 실종됐다. 아마 사망했겠지. 나는 당연 얼굴도 본 적이 없다. 이 분의 죽음 덕택에 내가 존재할 수 있었으니까. 얼굴도 모르는 이 분이 내 엄마의 전남편이었으므로 나는 이분의 동생과 친척들까지 알고 지낸다- 가 전화를 해서는 다짜고짜 물었다.

“자네 원** 씨라고 알제이?”

원 선생은 서울서 기자를 하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귀촌해 농사를 짓는, 내가 구례 와서 사귄 몇 안 되는 친구다.

“언니가 원 선생을 어떻게 알아요?”

“이. 멫 년 전에 사림 사는 할매집에 요양보호를 갔는디 그 냥반이 노상 할매집에 드나 들드마.”

“내가 그 냥반이랑 아는 건 어떻게 알고?” 

“자네나 그 냥반이나 글 쓰는 사램들잉게.”

기자 출신이라 요즘도 간혹 귀촌생활을 신문에 싣고야 있지만 글을 쓴다고 다 아는 건 아닌데….

“근데 원 선생은 왜요?” “이. 그 냥반 보험 들었능가 물어보소.”

뜬금없는 소리였다. 언니는 보험을 파는 사람도 아니다. 살만한데도 가만 있지 못하는 성격이라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시간 나는 틈틈이 성당 일을 하느라 나보다 더 바쁜 사람이다.

“왜요?” “이. 그 냥반 보험가입증서가 우리 성당으로 왔네.”

“그게 왜 성당으로 가요? 성당도 안 다니는 사람인데?”

“나야 모르제. 긍게 함 물어보소.”

당장 원 선생에게 전화를 했다. 보험에 가입했냐고 물었더니 나보다 더 어처구니 없다는 반응이었다.

“그걸 정 선생님이 어떻게 알아요?”

이만저만, 상황을 설명했다. 둘 다 폭소를 터뜨렸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원 선생이 구례성당 앞에서 아는 사람에게 보험을 들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주소도 다 제대로 불러줬는데 아무튼 가입증서는 성당으로 왔다. 성당 앞에서 보험을 들어서인 모양이었다. 원 선생은 성당에 가서 가입증서를 받아왔다. 구례살이는 이런 식이다. 대충 어디 어디로 보내면 이리저리 수소문해서 주인을 찾아간다. 정겨운 동네다, 해서 무서운 동네다.

처음 귀향했을 때 나는 좀처럼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지금도 마찬가지긴하다). 가는 곳이라곤 어쩌다 오일장, 하나로마트뿐이다. 어느 날 마트에 갔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었던지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혹 아는 사람 만날 새라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는데 누군가 덥석 내 팔을 잡았다. 돌아보니 아버지 연배의 노인네였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시골 바닥에서 성추행이라 뭐라 할 수도 없고, 외간 남자, 그것도 노인네에게 팔을 잡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운창이 딸내미 아니여?”

한 번도 본 적 없는 노인이 들먹인 건 분명 내 아버지 이름이었다.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천하의 싸가지 없는 나라도 아버지 이름 앞에서는 순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긍게. 아부지랑 똑같이 생게부렀구마. 모리고 봤는디도 딱 알겄네.”

소설에도 썼지만 아버지는 생전에 나의 외모를 ‘하의 상’, 그러니까 9등급 중에 7등급이라 평한 바 있는데, 하의 상인 내 외모는 아버지로부터 판박이로 물려받은 것이다. 어머니의 외모는 상의 중은 된다. 어쩌자고 아버지의 유전자가 어머니의 유전자를 이겼단 말인가. 세상의 다른 모든 싸움에는 진 주제에. 그래놓고는 하의 상이라니. 흥!

노인은 다짜고짜 시장통으로 내 팔을 잡아끌었다. 내 의사를 묻는 도회적 예의 따위는 물론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메뉴라도 물어줘야 하지 않는가! 노인은 들어선 당장 소리 질렀다.

“어이, 그거 주소. 운창이 딸내미 왔네.”

노인이 일컬은 ‘그것’이 왔다. 전어회무침이었다.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던. 

“운창이가 전어회무침이라먼 환장을 했네. 묵어보소. 여그가 젤 맛나게 무치네.”

나는 아버지의 딸이지 아버지가 아니다. 회를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방어, 참치, 전어 같은 기름기 많은 생선은 구운 것도 거의 먹지 않는다. 아버지의 소학교 동창이라는 노인은 회무침 접시를 자꾸만 내 앞으로 밀었다. 평소라면 하나도 먹지 않았을 회무침을 반 접시 넘게 먹었다. 이틀 내리 설사를 했다. 구례 사람들의 호의는 대체로 이런 식이다.

언젠가 서울에서 제자들이 내려왔다. 밥해주기 귀찮아 식당으로 갔다. 아버지가 즐겨 찾던 식당이었다. 일행이 셋이라 갈치조림 3인분을 시켰다. 누군가 다슬기수제비를 먹고 싶다고 추가했다. 식사가 다 끝나도록 다슬기수제비가 나오지 않았다. 주인아주머니가 왔다갔다 하기에 물었다.

“다슬기수제비는 언제 나오나요?”

아주머니가 고개를 쭉 빼고는 우리 밥상을 살폈다. 

“갈치조림도 다 못 묵었그마.”

그러고는 종종 뒤돌아섰다. 우리는 취소한 게 아니니 나오겠거니 한참을 기다렸다. 종무소식이라 다시 물었다.

“다슬기수제비 안 나와요?”

“다 묵도 못헐 것을 멀라고 시키요?”

그러니까 아주머니는 우리가 갈치조림을 다 먹으면 그때야 다슬기수제비를 할 생각이었던 것이고, 우리가 갈치조림 남긴 것을 보고는 할 생각을 접었던 것이다. 우리가 다슬기수제비를 맛보기 위해 일부러 갈치조림을 남겼다는 건 꿈에도 생각지 못한 채. 서울 것들은 입이 댓발이나 나와서 툴툴거렸다.

“이놈의 동네는 손님이 왕이 아니라 주인이 왕이야. 뭐든 주인 맘대로. 왜 맛도 못 보게 하는데! 내가 내 돈 내고 먹겠다는데.”

서울 사람 말이 맞긴 하다. 구례서는 뭐든 주인 맘이다. 언젠가 서울서 온 친구 배웅하러 나가는 길에 해장을 했다. 전날 과음을 한 터라 다슬기해장국을 시키면서 신신당부했다. 밥을 하나만 달라고. 각자 한 공기씩 비우기 어려울 것 같아서였다. 신신당부했는데도 밥이 두 공기 나왔다. 나이든 주인이 헛갈렸나싶어 한 공기를 도로 가져가라 했다.

“아이고, 젊은 사램들이 그거 묵고 워디 힘이나 쓰겄소. 밥을 든든히 묵어야제. 다 잡수씨요.”

이런 건 식당 주인이 아니라 엄마의 입에서 나옴직한 멘트다. 이번에도 서울 친구는 입을 비죽거렸다.

“자기가 엄마야 뭐야? 먹기 싫다는데 뭘 자꾸 먹으래? 엄마가 그래도 짜증나는구만.”

그래도 양심은 있어 주인 안 들리게 나지막한 소리로 속살거렸다. 결국 우리는 한 공기를 남겼다. 아까운 밥 남겼다고 아주머니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그러게 주지 말랬잖아욧!

오래 서울 살다 돌아온 나는 아직도 시골 사람들의 이런 오지랖이 잘 적응되지 않는다. 처음엔 서울 친구들과 한마음으로 욕했다. 자본주의 마인드가 없다느니 어쩌니 하면서. 언젠가부터 내가 시골 사람들을 대변하는 마음으로 변명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돈 생각하면 그러겠니? 돈보다 손님을 사람으로 대하니까 그런 거잖아. 이해 
좀 해라. 이 천박한 자본주의자들아! 그게 정이란 거다.”

여전히 서울 사는 친구들은 내 변명에 몸소리를 친다.

“정 싫어!”

정이라는 명목 하에 불쑥불쑥 사적 영역을 침범하는 사람들이 서울내기들은 불편한 것이다. 그 맘 모르지 않는다. 나도 얼마 전까지 그랬으니까. 그런데 이상도 하지. 불쑥 남의 맘을 비집고 들어온 구례 사람들 덕에 내 맘이 그 옛날 시골 할매 품처럼 넉넉하다. 넓어진 마음에 무엇을 품어볼까나, 세상 만물 꽁꽁 얼어붙은 겨울 지리산 자락에서 요즘은 그런 궁리나 하고 있다.
 


글 _ 정지아 (소설가)
소설가. 전남 구례에서 태어났다. 199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고욤나무」가 당선되었다. 소설집 「행복」 「봄빛」 「숲의 대화」 「자본주의의 적」 등이 있고,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 등이 있다. 김유정문학상, 심훈문학대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삽화 _ 김 사무엘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4-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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