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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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과 생명 깊이 응시하는 은혜로운 ‘봄’ 사순 시기

[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60. 사순 시기와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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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시기는 ‘바라봄’의 절기다. 마음의 창과 영혼의 창문을 활짝 열고 잠시 멈춰 머무르면서 기도하며 묵상하는 은혜로운 시기다. OSV

봄이다. 봄은 ‘봄(見)’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또 이 봄은 사순 시기의 영어(lent)와도 만난다. 이 ‘lent’는 ‘바라봄’(lens)을 뜻한다. 사순 시기는 ‘바라봄’의 절기다. 새봄의 사순 시기는 겨우내 꽁꽁 얼었던 땅을 뚫고 나오는 활기찬 만물의 움직임을 바라보면서 내적 성장을 이뤄내는 특별한 시간이다. 꼼짝하지 않고 죽을 것만 같았던 수많은 생명체가 봄 햇살에 여린 새움으로 돋아나는 새봄이다. 혹독한 겨울을 견뎌내고 푸른 싹과 꽃을 피운 봄은 다른 계절과 달리 ‘새봄’이라고 한다. 매년 찾아오는 봄, 늘 새로운 희망의 ‘첫봄’이다. 마음과 영혼의 창을 열고 바라보는 ‘봄’은 서로 마주하여 본다는 의미의 ‘관상’(contemplation)의 행위이기도 하다. 하느님의 본성과 마주하고, 또 그 모습으로 만들어진 나의 내면을 응시하는 시선이다. 본다는 것은 우리에게 참으로 경건하고 거룩한 기도의 행위다.

19세기의 소년 성인 도미니코 사비오는 어느 날 음란한 성인 잡지를 보면서 낄낄대며 웃는 친구들에게 달려가 잡지를 낚아채고 이런 말을 한다. “눈은 두 개의 창문이야. 이 창문으로 천사도 들어오고 악마도 들어온다.” 아이들이 야한 그림을 보기로 뭐 그렇게 화낼 일인지 현대의 우리로서는 의아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도미니코 사비오의 생각은 현대 과학으로도 설득력이 있다. 눈은 외부에서 오는 신호의 70 이상을 감지하는 감각기관이다. 보는 대상은 곧 나의 세상이다. 우리 뇌에는 ‘거울 신경세포’라는 것이 있어, 공포에 떠는 사람만 봐도 두려움을 느낀다. 음란한 그림을 보면 뇌는 마치 내가 그 현장에 있듯이 반응한다. 좋아하는 음식을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머릿속 뇌는 보는 행위를 곧 하는 행위와 유사하게 느끼게 한다. 그렇기에 보는 것에 대한 인간의 갈망은 참으로 강렬하다. 전철 안에서 거리에서 카페에서,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손안의 스크린에 빠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도미니코 사비오는 호기심이 많은 어린 나이지만, 거리에서 흥미로운 일이 벌어져도 외면하고 지나갔다. 친구들은 그의 행동이 이상해 이유를 묻자 “나는 나의 두 눈을 잘 간직해서 천상 어머니이신 성모님을 바라볼 거야”라고 말한다. 친구들이 몸싸움할 때에는 십자가를 들어 보이곤 ‘싸우기 전에 이 십자가를 먼저 보라’면서 싸움을 말렸다고도 한다. 도미니코 사비오의 ‘바라봄’은 관상이며 기도였다. 그래서일까? 그는 때론 탈혼 상태에서 신비로운 장면을 보기도 한다. 그에게 바라본다는 것은 거룩하고 영적인 행위였던 것이다.

볼 것이 많아도 너무 많은 세상에서 우리의 눈은 혹사당할 지경이다. 천천히 음미하며 감상하고 관조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었다. 매일 아침 창문을 열고도 창밖을 보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너무 많이 보아서 보지 않는 것들이 참 많다. 우리는 출근길에 혹은 틈나는 대로 스마트폰을 본다. 하지만 이는 ‘봄’이 아닌 ‘정보’를 쇼핑하는 행위에 가깝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알리고 팔기 위해 올려놓은 정보이며 상품이기에 그렇다. 매일 SNS에 들어가 별로 친하지 않은 수많은 사람의 사생활을 본다. 이 또한 ‘봄’이 아니라 훔쳐보는 관음의 행위다. 주말에 여행을 떠난다. 볼거리가 참 많다. 그런데 그렇게 서둘러 바라보는 행위 역시 구경이며 관광이다.

사순 시기의 ‘봄’은 어둠을 뚫고 나온 밝음을, 죽음을 이긴 생명을 경이롭게 관조하고 관상하는 ‘봄’이다. 잠시 멈춰 머무르면서 기도하며 묵상하는 절기다. 마음의 창과 영혼의 창문을 활짝 열고 바라본다. 보여서 보는 것이 아니다. ‘바라봄’은 나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기도의 행위다. 고요한 마음으로 밝게 비추는 희망을, 죽음을 뚫고 올라오는 생명을 깊이 응시하는 은혜로운 ‘봄’ 사순 시기이다.


영성이 묻는 안부

우린 누구도 나 자신을 내 눈으로 직접 볼 수가 없습니다. 거울을 통해 나를 보고 그 모습이 나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지요. 유아는 거울 단계(Mirror stage)를 통해 자아를 인식하면서 성장합니다. 타인의 시선과 평가와 반응을 통해 자기를 바라보지요. 그렇기에 타자의 시선이 나를 바라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다른 사람의 눈을 바라보면 그 사람과 나의 감정 세계를 공유하게 되니까요.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눈빛과 마주하면 공감의 뇌가 활성화되고 사랑의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분비됩니다. 바로 그때 공감이란 감정의 문이 열리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린 스크린 속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갈수록 눈 맞춤이 부끄럽고 어색한 일이 되어갑니다. 사순 시기, ‘바라봄’의 절기입니다. 하느님과 나, 이웃과 마주하고 바라보는 ‘눈 맞춤’이 우리의 기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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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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