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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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유정률 베드로, 세례 받은 후 예수님 사랑 깨닫고 부활의 증인이 되다

[윤영선 교수의 우리 성인을 만나다] 15. 성 유정률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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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선 작 ‘성 유정률 베드로’

출 생 | 1837년 평안남도 대동군

순 교 | 1866년(29세) 평양 감영 / 장사

신 분 | 회장




거룩한 순교로 부활의 희망과 기쁨 증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부활을 통해 우리가 죽음 이후 내세에서도 영원히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물게 될 것임을 보여주셨다. 오늘날 우리는 현세에서 주님 부활 대축일의 전례를 통해 부활의 기쁨과 환희를 체험하게 된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죽기까지 했으나 그분의 제자들마저 부활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였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들 앞에 다시 나타나 인간적인 의심마저 거두어주시면서 영원한 생명을 약속해주셨다.

우리에게 이보다 크고 기쁜 선물이 어디 있을까. 이렇게 차고 넘치는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부활의 증인이 되어 매일 영적으로 부활하는 삶을 보여준 신앙 선조가 있다. 유정률 베드로는 예수님을 알게 된 후 거칠고 방탕하던 삶이 180도로 변했고, 그의 삶과 거룩한 순교를 통해 부활의 희망과 기쁨을 보여주었다.



예수님 알게 된 후 거칠고 방탕한 삶 회개

어려서 부모를 잃은 유 베드로는 어렵게 살다가 한때 노름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 결혼 후에도 과격한 성격을 바꾸지 못하고 아내와 자주 싸우고 때리기까지 하였다. 그의 삶의 전환점은 베르뇌 주교에게 세례를 받은 이후였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발견하였다며 예전의 언행을 반성하고 진심으로 회개한 것이다. 심지어 아내를 때리는 버릇을 고치기 위해 짚신처럼 생긴 나무토막으로 자기 몸을 사정없이 때리고 피를 흘려가면서 “너 아프지? 네가 아프면, 네가 때리는 남도 아프지 않겠느냐?”고 자문자답하였다.

부인도 크게 달라진 남편을 보고 감화받아 착하고 상냥한 아내가 되었다고 한다. 신앙의 열정을 더해가던 1866년 포졸들에게 잡혀 평양 감영으로 끌려가면서도 유 베드로는 “오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주 예수께서 우리를 불러 주셨도다”라며 마냥 즐거워하였다. 옥에서 유 베드로만 끝까지 배교를 하지 않자 감사는 배교자들에게 곤장으로 유 베드로를 치게 하여 죽였다. 그의 시신은 대동강에 버려졌다.



대동강에 버려진 시신 가라앉지 않고 빛나

성인을 생각하면서 평양의 대동강을 떠올려 본다. 순교 후 성인의 시신이 가라앉지 않고 한동안 물 위에 둥둥 떠 있었으며 이상한 광채를 냈다고 한다. 지금은 북한에 있는 대동강에 가볼 수 없지만 오래된 대동강 사진에서 고즈넉한 풍경을 느낀다. 대동강 풍경 위로 끝까지 배교하지 않고 하느님을 향한 신심으로 영원한 부활을 꿈꾼 성인을 바라본다. 성인이 서 있는 주변으로는 성령의 은총이 가득히 내리고 있다.

평안남도가 고향인 성인을 생각하며 파주에 있는 참회와 속죄의 성당을 방문하였다. 이곳은 전쟁의 아픔을 참회하고 속죄하며 우리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염원하는 기도의 장으로 2014년에 완공되었다. 제대 위 천장 모자이크화에는 예수님 오른편으로 유정률 베드로 성인이, 왼편으로 우세영 알렉시오 성인의 모습이 보여서 너무나 반가웠다. 하느님 나라에서 부활하신 성인이시여~ 대한민국의 평화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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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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