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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꿈 CUM] 꿈CUM 신앙칼럼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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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心情)이 착잡하다.

가만히 추정(推定)해 보니 매정한 세상 때문인 것 같다. 무정(無情)한 사람들을 바라보면 정(情)나미 떨어진다. 인정(人情)은 사라졌고, 박정(薄情)스러운 말로 타인을 공격하는 세태다. 왜 이렇게 냉정(冷情)할까. 왜 미운 정(情)만 남았을까. 왜 이토록 마음씨(심정, 深情)가 비뚤어지고, 감정(感情)이 메말랐을까.

우리는 원래 이런 민족이 아니었다. 다정다감(多情多感)한 사람들이었다. “여러분의 말은 언제나 정(情)답고 또 소금으로 맛을 낸 것 같아야 합니다”(콜로 4,6)라는 성경 말씀을 이미 오래전부터 실천해 오던 민족이었다. 특히 과거 순교자들은 정(情)이 넘쳐서 하느님의 복음을 세상과 나눴고,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쳤다.(1테살 2,8 참조)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가슴 뭉클하게 하는 정(情)이 무수히 많다.

친구 사이의 우정(友情), 사랑하는 연인들의 애정(愛情), 민족과 나라를 향한 충정(忠情), 그리고 신뢰의 정(情), 흠모의 정(情), 석별의 정(情), 고운 정(情), 첫정(情), 풋정(情), 잔정(情)…. 이렇게 우리는 이미 가진 정(情)이 많다. 그 옛정(情)을 회복해야 한다. 어떻게? 가장 위대한 정(情)을 기억해 내면 쉬울지도 모른다.

정(情) 중의 정(情), 정(情)의 최고봉은 모정(母情)이 아닐까. 모정(母情)만큼 위대한 것이 또 있을까. 모정(母情)은 정(情)의 고갈로 바짝 마르고 갈라진 우리 마음을 회복시킬 것이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매정한 세상을 이겨낼 힘을 얻을 수 있다.

그 모정(母情)을 넘어서는 모정(母情)이 있다. 우리는 모정(母情) 중의 모정(母情), 모정(母情)의 최고봉은 마리아 모정(母情)이라고 고백한다.

성모 성월이다. 거룩한 어머니(聖母)의 정(母情)을 생각하니 편안해진다. 그 품에서 잠시만 머물렀을 뿐인데, 세상의 그 어떤 무정(無情)함도, 박정(薄情)스러운 공격도 나를 흔들지 못한다.

‘망운지정’(望雲之情)이라는 말이 있다. 

구름을 바라보며 그리워함, 즉 타향(他鄕)에서 고향(故鄕)에 계신 부모(父母)님을 생각한다는 뜻이다.

이 세상에서의 타향살이가 끝나고, 하느님 나라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 날, 거룩한 어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나를 정(情)겹게 안아주실 것이다. 
 

 


글 _ 우광호 발행인
원주교구 출신.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1994년부터 가톨릭 언론에 몸담아 가톨릭평화방송·가톨릭평화신문 기자와 가톨릭신문 취재부장, 월간 가톨릭 비타꼰 편집장 및 주간을 지냈다. 저서로 「유대인 이야기」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성당평전」, 엮은 책으로 「경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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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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