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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 궁금증] <56> 유다인들은 왜 장례를 신속하게 치렀을까

죽어도 영혼은 육체적 느낌 있다 여겨 시신 소중히, 방치하면 가장 큰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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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4처 `예수 그리스도 무덤에 묻히심`(지거쾨더 작, 20세기).
 
 
  유다인들은 묘지를 참배한 후 무덤 위에 돌을 얹어 놓는 관습이 있는데, 이는 무덤을 방문한 증표라고 한다. 사랑하는 이와의 영원한 이별인 죽음은 시공을 초월해 인생의 가장 큰 슬픔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죽은 이를 기억하는 일은 가장 인간적 행위이다. 유다인들은 죽은 뒤 예루살렘 올리브산에 인접한 기드론 골짜기의 경사진 지역에 묻히고 싶어한다. 유다인들이 고대하던 메시아가 올리브산에 내려와 공동묘지 중앙의 길을 통과해 예루살렘 성전으로 들어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사후 세계를 신성시하거나 죽은 사람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믿지 않았다. 인간이 죽게 되면 일정 기간 땅 밑에 거처하다 종말이 되면 하느님 앞으로 불려나와 심판을 받는다고 믿었다.

 이처럼 유다인들에게 죽음은 결코 멸망이나 완전한 소멸이 아니다. 육체가 현존하고 최소한 뼈들이 아직도 현존하는 동안 영혼은 극도의 허약한 상태에 있을 뿐이었다고 믿었다. "그림자들이 몸서리치네, 물 밑에서 그 주민들과 함께. 그분 앞에서는 저승도 벌거숭이 멸망의 나라도 가릴 것이 없네"(욥 26,5-6).

 죽은 사람의 영혼은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력도 끼칠 수 없지만 자신의 육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모두 느낀다고 믿었다. 이런 믿음으로 유다인들은 세상을 떠난 이들의 시신을 소중히 다뤘고, 예를 갖춰 장례식을 치르는 일을 미덕이자 선행으로 받아들였다. 만일 장사를 치르지 못하고 들에 방치돼 공중의 새나 들짐승에게 뜯어 먹히도록 버려지는 것을 가장 큰 저주로 생각했다(1열왕 14,10-11 참조).

 그래서 유다인들은 사람이 죽게 되면 반드시 24시간 안에 장례식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했다(신명 21,23 참조). 사람은 흙에서 왔으니 될 수 있으면 빨리 흙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 그들 생각이었다(창세 3,19). 그래서 시신이 빨리 썩어 흙으로 돌아가도록 돕기 위해 시신을 무덤에 안치할 때 세마포로 싸거나 나무 관을 사용했다. 물론 이런 조기 매장 풍습은 팔레스티나 지역의 무더운 기후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또 장의 예식 중 시신을 떠나 보내기 전에 입을 맞추기도 했다. "요셉은 아버지의 얼굴에 엎드려 울며 입을 맞추었다. 그런 다음 요셉이 자기 시의들에게 아버지의 몸을 방부 처리하도록 명령하자, 시의들이 이스라엘의 몸을 방부 처리하였다"(창세 50,1-2). 눈을 감기고 난 뒤에는 이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처럼 시신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성껏 물로 깨끗이 닦아주고, 냄새나는 것을 막기 위해 향료를 발랐다. "주간 첫날 새벽 일찍이 그 여자들은 준비한 향료를 가지고 무덤으로 갔다"(루카 24,1).

 시신은 땅에 매장하거나 동굴에 안치했다. 동굴 묘지는 입구 바닥에 홈을 파고 둥근 돌로 가로막아서 사람들이나 짐승들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했다. 장례식은 무덤 입구를 닫고 무덤에 회칠을 하는 것으로 모두 끝났다. 장례식이 끝난 뒤에도 30일 동안 곡을 하며 고인을 기렸고 유족들은 사흘간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유다인들은 사후 사흘이 돼서야 확실한 죽음을 맞이하고 나흘째부터 시신이 부패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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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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