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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 궁금증] 77. 구약성경의 율법에서는 왜 무자비한 복수를 명령했나?

하느님의 벌은 이스라엘 지키는 사랑의 견책 … 예수 그리스도, ''원수를 사랑하라'' 원칙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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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렘브란트, `십계명 석판을 든 모세`, 1659, 베를린 시립박물관.
 
 
   일반적으로 하느님 이미지는 자비와 용서, 사랑이다. 그런데 구약성경의 어떤 대목을 보면 하느님은 용서가 없는 아주 무서운 분으로 묘사된다.

 "사람을 때려서 죽인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때린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화상은 화상으로, 상처는 상처로, 멍은 멍으로 갚아야 한다"(탈출 21장 참조).

 원시 사회나 고대 사회에 적용되던 형벌 원칙인 동태복수법으로 피해자에게 입힌 상해와 손해를 가해자에게 그대로 보복한다는 것이다. 구약 당시 사회에서 복수는 사회 정의를 바로잡기 위해 정당하고 필요불가결한 것이었다.

 율법(Torah)이란 십계명을 중심으로 한, 하느님 백성의 생활과 행위에 관한 하느님 명령이다. 율법의 근본정신은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의 집행 또한 공정해야 한다.

 특히 중세 때나 17~18세기 엄격주의가 성행했던 시절에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은 상선벌악(賞善罰惡)의 심판관으로 부상했다. 그래서 구약의 하느님은 계약이나 계명의 준수를 철저하게 요구하시고, 이를 위반하는 자는 용서 없이 처벌하시는 무서운 분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구약에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보여주는 대목도 무수히 찾아낼 수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율법은 그들의 삶을 옥죄는 것이 아니라 발걸음을 인도해 주는 지침이었던 것이다.

 "제가 고통을 겪은 것은 좋은 일이니 당신의 법령을 배우기 위함이었습니다. 저에게는 당신 입에서 나온 가르침이 좋습니다. 수천의 금과 은보다 좋습니다"(시편 119, 71-72).

 만일 십계명이 없었더라면 이스라엘 민족이 강대국들 전쟁 등 엄청난 세계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들만의 신앙 공동체를 이루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실제로 성경을 잘 살펴보면 하느님은 결코 까다로운 규정과 형벌로 인간을 옥죄고 억압하는 분이 아니다. 그분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구원자요 자녀를 돌보시는 아버지와 같은 분이시다. 율법의 목적은 근본적으로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벌은 죽음의 형벌이 아니라 사랑의 견책이다. 또한, 구약성경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하느님이 당신 백성에게 벌을 내리신 다음, 후회하시거나 마음 아파하시는 대목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에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태복수법의 원칙은 점차 퇴색해 갔다. 랍비들이 모세의 법을 지키려는 결의와 동태복수법 실행의 어려움 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겪었기 때문이다. 동태복수법은 금전적 보상제도로 대치됐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완전히 폐기됐다.

 예수님께서는 악행과 학대를 당할 때 보복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예수님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대신에 "원수를 사랑하라"는 원칙을 제시하셨다(마태 5,38-48). 이처럼 율법은 천년 이상 동안 이스라엘 사회 안에서 역사와 종교적 상황을 고려하며 계속 발전됐다.


 
▲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교구장 비서실 수석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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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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