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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에 따른 영성생활] 20. 예수님과의 만남을 향한 데레사의 여정 ⑩

“십자가에는 구원이 있고, 영원한 생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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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녀 데레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중에서도 특히 그분의 수난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다. 그림은 엘 그레코 작, ‘옷을 빼앗기는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각별한 사랑

성녀 데레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중에서도 특히 그분의 수난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습니다. 성녀는 그리스도의 수난이야말로 그분 생애의 정점에 있다는 것을 영적인 직감으로 간파했고 일생을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며 많은 은총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성녀는 강생하신 그리스도가 근본적으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라는 점을 잘 알았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가 추구해야 할 완덕의 구체적인 모습이 또 다른 그리스도가 되는 것,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처럼 변모(變貌)하는 데 있다면, 그가 수난하신 그리스도를 덧입지 못한다면 이러한 성성(聖性)의 목표에는 절대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변모’라는 이 목표는 그분께서 받으신 수난과의 통교를 전제로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인격에 바탕을 두고 있는 성녀 데레사의 영성에서 ‘구원하는 고통의 신비’는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성녀가 자신의 여러 작품을 통해 사용한 용어들(고난, 고통, 수난, 십자가, 희생, 수고 등)은 이 점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물론 신앙생활의 최종점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는 삶입니다. 그러나 ‘십자가’ 없이 절대 부활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성녀 데레사 역시 부활을 향한 삶을 지향했지만, 이 현세에서 드러나는 그리스도께 대한 근본적인 체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모아졌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자신 안에 이미 기쁨과 부활의 씨앗을 간직하고 있는 십자가에 대한 체험을 의미합니다. 즉, 영성생활의 종착점으로서 부활의 영광을 지향해야 하지만 이 영광의 씨앗이 싹트게 하려면 그 보금자리인 십자가를 위한 자리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녀가 살고자 했고 또 가르친 십자가는 ‘영광스러운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성녀의 작품에는 십자가를 짊어지며 체험하게 되는 부활을 머금은 수난의 기쁨이 수없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음의 시는 그리스도 수난에 대한 성녀의 사랑을 잘 전해줍니다. “그에게 있어 십자가는 생명과 위로의 나무, 그리스도 천상을 향한 감미로운 길이라네.”(시 8번)



인간의 삶을 위해 예형이 되는 주님의 수난


성녀 데레사의 영성에서 그리스도의 수난이 담고 있는 의미는 다양합니다. 우선, 성녀에게 그리스도의 수난은 인간의 삶을 위한 예형(例型)이 됩니다. 이 수난의 빛 안에서 우리는 인간 삶에 대한 참된 이해에 이를 수 있습니다. 고통 속에 잠긴 인간의 삶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통해 성찰할 때 비로소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주님의 수난은 가장 처참한 고통 속에서도 결코 하느님은 부재(不在)하지 않으신다는 진리를 우리에게 전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우리에게 힘이 되어 줍니다.

하느님은 결코 하늘 저편 먼 곳에서 팔짱을 끼고 관망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삶과 역사의 소용돌이, 무엇보다 우리의 가장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부분까지 내려오셔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친히 우리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분이십니다. 바로 이 때문에 성녀는 십자가 수난의 신비를 간직한 그리스도의 인성을 더 깊이 사랑했습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에게서 ‘인성’을 배제한다는 것은 역사에서 그분의 수난을 배제하는 것이며 동시에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인간적 요소 중 하나인 ‘죄’와 ‘고통’을 배제한 채 인간 구원을 말하는 오류에 빠지게 합니다. 그래서 성녀는 이 그리스도의 인성에 굳게 뿌리내린 상태에서 영적 여정을 걷도록 가르쳤으며, 그분의 인성이 갖는 가장 특징적인 모습으로 그분의 고통과 십자가를 들었습니다.

이런 선상에서 성녀는 그리스도의 ‘수난’이야말로 인류를 향한 하느님의 심오한 사랑을 드러내는 가장 감동적인 사건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수난을 통해 이제 하느님의 사랑은 만질 수 있고 충만하게 이해 가능한 형태로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이렇듯 십자가 위에서 수난하시는 하느님이신 그리스도는 인간의 사랑을 목말라하며 그를 찾아 주저 없이 천상에서 내려오신 인류의 ‘신랑’이자 ‘사랑하는 임’이십니다. 그래서 성녀는 그런 예수님을 두고 자주 그런 애틋한 호칭으로 부르곤 했습니다. 그렇게 사랑을 찾아 인간이 되신 하느님께선 역설적이게도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기 위해 당신 자신을 ‘인간’의 모습 아래 그리고 더 나아가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이라는 처참한 모습 아래 숨기셨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은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에 미친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준주성범」에 나오는 다음의 권고를 귀 기울여 들으며 주님 수난의 신비를 우리 삶 속에 구현하도록 해야겠습니다. “십자가에는 구원이 있고, 생명이 있고, 원수의 공격을 막는 방패가 있다. 십자가에는 천상의 아름다운 맛이 스며 있고, 마음의 힘이 있고, 영혼의 즐거움이 있고, 가장 높은 덕이 있고, 완전한 거룩함이 있다. 십자가가 아니면 영혼의 구원도 영생의 희망도 없다. 그러니 너는 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라. 그러면 영생의 길을 갈 것이다.”(준주성범 2권 12장 4절)

 
 

▲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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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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