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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에 따른 영성생활] 22. 예수님과의 만남을 향한 데레사의 여정 ⑫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삶의 상징이자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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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살아내야 할 삶의 상징이자 모델이다.

하느님의 지혜인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도 바오로와 마찬가지로 성녀 데레사에게 있어서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느님의 지혜에 이르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의 수난은 인류가 지향하는 세속적인 위대함, 지혜, 자기만족과 같은 가치들을 위기로 몰아넣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잘못된 관념과 하느님의 이름으로, 신앙의 이름으로 만들어 버린 ‘아성(我城)’,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하느님의 뜻을 가져다 포장해버린 잘못된 ‘우상(偶像)’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져버리고 맙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실 당시 사람 대부분을 비롯해 심지어 그분을 3년이나 따르며 동고동락했던 제자들마저 하느님은 너무 먼 당신으로 비쳤고 천상 옥좌에 좌정하신 하느님이 이 땅에 우리의 육신을 취하고 심지어 우리를 위해 모욕을 당하고, 잊히고, 멸시받는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워하며 거부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십자가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걸림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십자가는 하느님의 지혜와 사랑이 온전히 드러나는 ‘역설(逆說)’입니다.

성녀 데레사는 이러한 그리스도의 모습을 관상하면서, 그리스도인이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려면 주님의 삶, 더 나아가 그분의 수난과 죽음을 깊이 받아들여 자신의 삶에 통합해야 한다는 신앙의 근본 진리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녀는 자주 그리스도의 고통을 관상하기 위해 수난하시는 주님께 눈길을 돌리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분의 고통이 자기 영혼 안에 새겨지도록 했습니다.


어떻게 주님의 수난에 대해 묵상할 것인가?

주님의 수난에 대한 이런 끊임없는 묵상은 성녀로 하여금 이 수난을 특별한 형태로 재현하게 했습니다. 이에 대해 성녀는 「완덕의 길」에서 그리스도의 수난을 어떻게 자신의 기도생활에 적용해서 영적 진보를 위한 밑거름으로 사용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한 바 있습니다.

“여러분이 수고 중에 있거나 슬픔 가운데 있다면, 기둥에 묶여 수없이 고통받으시는 그분을 바라보십시오. 여러분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그분의 육신은 수많은 조각으로 갈가리 찢기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분을 박해하고 또 어떤 이들은 그분에게 침을 뱉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그분을 부인했습니다. 그분은 벗도 그 누구도 없이 홀로 돌아가십니다. 추위로 꽁꽁 어셨고 깊은 고독 속에 계셨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그분을 위로해 드릴 수 있습니다. 동산에 계신 그분, 십자가 위에 계신 그분, 또는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그분을 바라보십시오. 그분을 기쁨으로 가득 채워 주십시오. 지극한 연민과 눈물이 가득 고인 아름다운 눈으로 그분을 바라보십시오. 단지 여러분이 그분을 위로해주기 위해 그분과 함께 걷고 고개를 돌려 그분을 바라보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분께선 여러분의 고통을 위로해 주기 위해 당신의 고통일랑 잊어버리실 겁니다”(「완덕의 길」 42,5).



그리스도인의 근본 정체성

성녀는 그리스도의 고통에 대한 관상을 통해 십자가의 지혜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녀가 바라보고 이해한 그리스도는 무엇보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하느님”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살아내야 할 삶의 상징이자 모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닮아야 할 근원적 모델이자 뒤따라야 할 모범이 되십니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는 성녀가 성성(聖性)을 이루기 위해 했던 모든 수덕적인 노력을 떠받치는 근본 바탕이었습니다. 성녀가 가르치는 수덕(修德)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를 따르기(Sequela Christi)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녀에게 있어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는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인류에게 참된 진리를 가르치시는 스승이시며 하느님 사랑의 극치를 보여주는 계시자이시고 인간의 삶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예형(例型)이시며 더 나아가 십자가의 여정 중에 우리를 동반하며 우리의 십자가를 함께 짊어지는 참된 벗이십니다. 그래서 성녀가 간절히 바랐던 것은 “오직 하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하여 사랑의 길을 가느라고 맛 같은 것은 아예 바라지도, 빌지도 않을뿐더러 이승에서는 그런 것을 주시지 말라고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영혼의 성」 4궁방 2장 10절).

20세기의 위대한 가톨릭 신학자 중 한 사람인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는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 대답한 바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과연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우리는 수많은 개념을 바탕으로 다양한 대답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그리스도인의 역할 또한 분화되고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2000년 역사상 변치 않았던, 그리고 앞으로도 절대 변치 않을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그분의 제자라는 점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근본 정체성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얼마나 이 신원 의식을 갖고 이를 삶 속에서 구현하려 노력하고 있습니까?


▲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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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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