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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 해-성경의 땅을 가다] (3) 비로소 모두 한데 모여 미사 봉헌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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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테네 중심가에 있는 디오니시오 주교좌 성당. 사도 바오로의 아레오파고스 설교(사도 17,16-34)로 시작된 아테네 복음화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깔리메라!"(그리스 아침인사)
 시차 때문인지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어제 자정이 넘어 숙소인 시내 호텔에 도착해 새벽에야 겨우 잠들었는데도 말이다. 손목시계는 낮 12시를 향하고 있었다. 시계를 그리스 시각으로 맞추는 걸 잊었기 때문이다. 한국 시간으로는 해가 중천에 떴을 시간이니, 몸이 시간을 기억한다는 게 놀랍기만 하다.
 식당에 내려가 하루 먼저 도착한 두 분 신부님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멀리 떠나온 때문일까, 신부님들과 재회가 더 없이 반갑다. 식사 후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디오니시우스 주교좌 성당으로 향했다. 성당에 들어서니 기분 나쁘지 않은, 오래된 건물 특유의 냄새가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그리스 할머니 한분이 성당 한편 성화 앞에 초를 켜고 기도하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저 빛바랜 무릎틀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을까. 수많은 이들의 간절한 기도가 오래된 이 성당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 같았다.
 믿음ㆍ소망조가 우리보다 하루 먼저 떠나왔으니 오늘에야 비로소 모두가 한데 모여 순례를 시작하는 미사를 봉헌하는 셈이다. 미사 강론에서 나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왜 이곳에, 이 순례여정에 불러주셨는지 하느님 부르심의 뜻을 앞으로의 여정동안 묵상하자"고 말했다. 어쩌면 우리 신앙인의 삶은 끊임없이 우리를 불러주시는 하느님께 향한 응답이 아닐까. 순례여정을 여는 이 미사를 통해 순례객들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는 느낌이다. 이 순례 동안 주님께서 길을 비춰주시고 함께 해주시기를 나는 기도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키신 주님께서 광야에서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인도해주셨듯이.
 미사 후 제의방에 놓인 미사 봉헌책자에 사인을 하다가 반가운 필체를 발견했다. 바로 정진석 추기경님 사인이었다. 정 추기경님은 2008년 11월 바오로 해를 맞아 순례단 300여 명과 함께 이곳에서 미사를 봉헌하셨다. 2009년 3월 역시 순례자들과 함께 다녀가신 염수정 주교님 사인도 보였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했던가. 내 기억은 잠시 한국 순례객 300명으로 성당을 가득 메웠던 그때로 돌아갔다.
 미사를 마친 우리 일행은 서둘러 코린토로 향했다. 버스로 이동하는 동안 가이드를 맡은 자매님이 그리스 역사와 문화를 자세히 설명했다. 그리스 사람들은 나라 이름을 `그리스`라고 부르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고 한다. 로마의 지배를 받을 때 자신들을 그레코라고 부른 연유라고 한다. 그래서 `헬라스`라고 불러주기를 바란다고 한다.
 그리스 사람들은 모두 여유가 넘친다. 그리스에서 거리를 뛰는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뉘는데 도둑과 그 뒤를 쫓는 경찰이란다. 물론 우스갯소리지만 이곳 사람들 삶이 그려지는 대목이다. 실제로 부지런한 한국 사람들이 와서 일을 하다보면 속 타는 일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 조금 지나면 인생을 즐길 줄 아는 그리스 사람들 매력이 흠뻑 빠진단다.
 사실 인생에서 빠른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가끔은 인생도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요즘은 그리스의 풍습도 많이 변화됐다고 한다. 경제적 이유 때문이란다. 역시 불변하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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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0-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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