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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따라 떠나는 신앙여행]-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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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대선과정을 통해 우리는 국민들이 경제회복에 대해 얼마나 큰 열망을 지니고 있는 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급기야는 `경제만 회복된다면 누구든, 무엇을 하든 상관없는 것이냐`하는 말이 농담처럼 조소처럼 회자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를 접할 때마다, 현대인의 생활에서 경제가 중요한 바탕임을 인정하면서도 그리고 많은 이들의 절박한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고 씁쓸해지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정말 그럴까? 경제만 좋아지면 행복해지는 것일까?
 하지만 동양의 많은 성현들은 오히려 모든 불행은 인간의 끊임없는 욕심에서 비롯되는 것이어서 이러한 물질적 제약에서 자유로워져야 하며, 더 나아가 물질보다 더 중요하고 근원적인 가치를 찾아 얻어 누릴 때 참된 행복을 만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유학에서도 가난(貧)과 부(富)의 문제는 늘 도(道)와 결부시켜 설명하곤 한다. 공자는 「논어」 위령공편에서 "군자는 도를 구하지 먹을 것을 구하지 않으며, 도를 걱정하지 가난을 걱정하지 않는다"(君子 謀道 不謀食, 憂道 不憂貧)고 말하면서 삶의 참된 목표 안에서 빵과 가난의 문제를 바라보도록 이끌고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교의 입장은 어떠한가. 신명기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먹이신 것이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다"고 고백한다(신명 8,3).
 예수 또한 공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광야에서 40일을 단식한 후 악마에게서 유혹을 받을 때, 돌을 가지고 빵을 만들어 보라는 악마의 말에 이 말씀으로 대응했다(마태 4,4).
 참고로 내가 가지고 있는 몇 권의 중국어 성경은 모두 요한복음 1장 1절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라는 구절을 "太初有道"라고 번역하고 있다. 하느님 말씀을 도(道)로 번역한 것이다.
 뿐만이 아니다. 예수가 부자청년에게 "가서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따르라"고 말한 것은 그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기 때문이며(마태 19,16-26), 산상설교를 통해 `마음으로 가난한 이들이 행복하다`고 선언할 수 있었던 근거는 그것이 인간 삶의 목표인 `하늘나라`와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었다(마태 5,3).
 언젠가 공자의 제자 자공이 "가난해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해도 교만하지 않는다면 어떻습니까?"하고 공자에게 물었다. 공자는 "괜찮기는 하나, 가난하면서도 도를 즐기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다"고 대답했다(子貢曰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子曰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論語」,學而篇).
 이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안빈낙도(安貧樂道)에서 곤궁함에 편안한 것(安貧)보다 도를 즐기는 것(樂道)이 더 중요하고 높은 경지임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즉 어떻게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왜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이며, 결국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道)가 무엇이며 또 어떻게 그 도를 즐기며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귀착된다.
 오늘날 가난을 이야기하는 것이 무모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인간 삶의 궁극적인 목표인 하느님 그리고 참된 행복을 위해 가난해야 한다는 말도 무모한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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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8-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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