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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따라 떠나는 신앙여행]-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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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결에 관한 이야기도 가난 못지않게 요즘 시대와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그 내면에 맑고 깨끗한 삶에 대한 큰 동경을 지니고 살아간다. 그래서 초기 한국교회의 여신도들 중에는 얼마나 많은 이들이 동정의 삶을 갈망했는지 모른다. 실제로 몇몇 순교성녀들이 동정녀로 살아가기 위해 많은 고초와 박해를 이겨냈던 이야기를 들어보면 눈물겹기까지 하다.
 정결의 외적 표지는 물론 몸의 깨끗함(潔)이다.
 그러나 동양 종교들의 수양과정이 늘 그러하듯이 정작 더 중요한 것은 그 바탕이 되는 내적 마음과 정신의 태도이다. 그것은 정(貞)으로 표현된다.
 그렇다면 貞은 무슨 의미일까?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따르면 貞은 점으로 묻는 것이다(貞, 卜問也).
 고대의 점은 국가의 큰 행사로 자신들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신의 뜻을 묻기 위해 행했던 종교적인 행사였다. 정현(鄭玄)이라는 학자는 이 말을 "일의 올바름을 묻는 것이 貞이다"(問事之正曰貞)고 풀이한다. 묻는다는 것은 무엇이 신의 뜻을 올바르게 행하는 것인지 깨닫고 지키기를 갈망하는 자세이다.
 그래서 「논어」(論語)에서도 공자는 "군자는 바르고 곧으나 무턱대고 고지식하지는 않다"(君子 貞而不諒, 위령공편)고 강조한다. 여기에서 주자는 貞을 `바르고 굳건한 것`(正而固也)으로 주석하고 있다. `바르고 곧은 것`이 貞의 특징이 된다는 것이다.
 이 말을 「중용」(中庸)의 개념으로 풀어보면, 선(善)을 택하여 확고하게 잡고 있는 것(擇善而固執)으로 설명할 수 있다. 중용 20장을 보면, `하늘의 도(道)는 진실한 것이며, 인간의 도는 그것을 본받아 진실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진실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은 두 단계로 이뤄진다. 하나는 최고의 선을 끝까지 구하여 찾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것을 확고하게 잡아 놓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바르다`(正)는 것은 또 무슨 뜻일까?
 역시 「설문해자」를 보면 재미있는 설명이 나온다. 그에 따르면 正은 一과 止로 되어있고, 올바르다는 뜻으로 종합적으로 보면 `하나에서 그친다`(一以止)는 의미다. 하나란 물론 가장 높은 가치를 나타낸다. 더 나아가서 옛 글자를 보면, 正은 一과 足(족)으로 합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止(지)나 足(족)은 거의 같은 뜻이다.
 그러나 어감이 다르다. 止는 그것으로 그친다는 의미지만, 足은 다른 아무것도 필요 없을 만큼 충분히 만족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서울 대신학교 옆에는 가톨릭 교리신학원이 있다. 올해는 그 교리신학원이 설립된 지 50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
 그래서 교리신학원에서는 올해를 의미있게 보내기 위해 한 해를 살아가는 지표로 다음과 같은 성녀 데레사의 말씀을 선정하고 선포했다. "주님만으로 충분합니다." 나에겐 무척 감동적이었고 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졌다.
 예수님도 마르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루카 10,42)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그 한 가지가 무엇인지를 당신의 사랑고백으로 일깨워주고 계시는 것 같다. "주님만으로 충분합니다." 이것이 바로 정결의 삶이 아닐까?
 다시 정리해보자. 신앙인으로서 정결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몸을 깨끗이 보존하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결국 무엇이 올바른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며 최고의 선인지 끊임없이 찾고 깨달으며, 자기가 찾은 그것을 끝까지 지키려고 노력하는 과정 그 위에 놓여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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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8-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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