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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따라 떠나는 신앙여행] 6 - 순명과 극기

하늘의 뜻에 어긋나는 자신을 이겨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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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섭 신부(가톨릭대 교수, 동양철학)


 사제나 수도자들에게 `복음적 권고` 중에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의외로 많은 분들은 `순명`이라고 답한다. 하느님 뜻을 끊임없이 식별해가는 과정도 힘들거니와,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뜻을 포기하는 것은 더욱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학에서는 순명을 `하늘의 뜻(天命)을 알고, 그것을 수신(修身)을 통해 죽을 때까지 지켜가는` 입명(立命)의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맹자는 진심편(盡心篇)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요절하거나 장수함에 의심하지 않아, 몸을 닦고 天命을 기다림은 命을 세우는 것이다"(夭壽不貳 修身以俟之 所以立命也.).
 이 구절에 대한 주자(朱子)의 자세한 설명을 들어보자. "의심하지 않음은 천리(天理)를 앎이 지극함이요, 몸을 닦고 죽음을 기다림은 하늘을 섬겨 몸을 마치는 것이다. 입명(立命)은 하늘이 부여해 준 것을 온전히 보존하여 인위(人爲)로서 해치지 않음을 이른다."
 곰곰이 새겨보면 맹자의 이 말에서는 군자의 웅장한 포부가 느껴진다. 그저 단순히 외적으로 규정된 법적 권위나 장상의 말에 순종하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이 하늘로부터 받은 소명에 온몸을 던져 투신하며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맹자를 읽으면서 사도 바오로의 열정을 만난다.
 그러나 이 길이 그렇게 만만한 길은 아니다. 편안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들을 고뇌하고 몸부림쳐야 그것이 가능할까.
 공자의 제자들은 그것을 이룬 공자의 모습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선생님께서 네 가지를 끊으셨으니 사사로운 뜻을 지니지 않으셨고, 기필코 하려는 게 없었고, 고집하지 않으셨고, 나를 내세우지 않으셨다"(子 絶四 無意 無必 無固 無我. 「論語」 子罕篇).
 결국 이 네 가지는 극기(克己)의 일이다. 율곡 선생은 `克己`의 `己`를 `내 마음이 좋아하는 바가 천리(天理)에 합당하지 않은 것`(吾心所好 不合天理)이라고 설명한다. 즉 하늘의 뜻에 부합되지 않는 자신의 사사로움을 끊임없이 이겨나가는 길, 그것이 순명의 삶인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구원역사에서 `순명`은 죄와 구원의 관건이 된다. 그래서 로마서는 아담과 그리스도를 비교하며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이가 죄인이 되었듯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이가 의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로마 5,19)고 선언한다.
 우리는 또한 순명의 가장 처절한 표본으로 예수의 십자가상의 죽음을 기억한다.
 그러나 그뿐이 아니다. 예수가 이 세상에 온 것도, 와서 전해준 모든 말씀도, 모두 아버지 하느님의 뜻에 따른 행동이었다(요한 8, 21-29).
 그래서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이렇게 그리스도를 찬미하며 노래 불렀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리 2,7-8).
 내가 장상의 손 안에 내 손을 합하고 순명을 서원한 것은 장상이 완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섭리하시고 장상을 통해서 활동하시며, 결국은 우리를 더 올바른 길로 이끄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더욱 바라는 것은, 나의 작은 순명을 통해 더 자유로워지고, 더 큰 은총을 체험하며, 하느님을 더욱 깊이 사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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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8-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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