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유학따라 떠나는 신앙여행] 8- 죽음 후에 남는 것...

하느님 앞에 섰을 때 사랑의 성적표를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최기섭 신부(가톨릭대 신학대 학장, 동양철학)

 얼마 전 군복무 중에 교통사고로 젊은 생을 마감했던 한 제자 신학생의 죽음을 지켜봐야했다. 늘 생글생글 웃으며 따르던, 정말 착하고 성실한 학생이었다. 군복을 입은 채 말없이 누워있던 그의 주검을 바라보며 마음으로 많이 울기도 했지만, 그보다 사람이 무엇을 위해 사는지 그리고 왜 사는지 비통한 마음으로 되물어야 했다.
 유학에는 내세(來世)의 개념이 없다. 그리고 영혼의 불사불멸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혼백(魂魄)이 분리되는 것으로, 혼(魂)은 기(氣)가 되어 하늘로 흩어지고, 백(魄)은 땅에 묻힐 뿐이다. 즉 자연의 순리일 따름인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죽어도 썩지 않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이른바 삼불후(三不朽)라는 것으로, 덕(德)과 공(功) 그리고 가르침(言)인데 「春秋 左氏傳」의 다음과 같은 구절에 근거하고 있다.
 "가장 뛰어난 것은 덕을 세우는 것이고, 그 다음은 공을 이루는 것이며, 그 다음으로는 말을 세우는 것이다. 비록 오래되어도 없어지지 않아 이것을 썩지 않는다고 말한다."(太上有立德, 其次有立功, 其次有立言, 雖久不廢 此之謂不朽.) 「양공(襄公) 24년조」
 이 세상에 덕을 베풀고, 공을 세우며, 가르침을 펴야 한다는 이 삼불후의 개념을 통해 우리는 유학이 지닌 중요한 삶의 자세를 배울 수 있다. 하나는, 인간 삶의 목적은 자신이 쌓은 것을 세상과 나눠야 하며, 그것이 삶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모든 일에 수신(修身)이 바탕이 되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 또 하나는, 이것만이 조상들 그리고 후손들과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그것을 통해 그들은 역사 안에 영원히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삶을 도덕적으로 완성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목표는 물론 하느님이다. 그것도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내가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는`(코린 13,12) 지복직관(至福直觀)의 삶이다. 어떻게 살면 그것이 가능할까? 내가 하느님과 영원히 함께 살려면, 적어도 그분의 본질적 특성을 배워 지니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주 오래 전에, 우리가 장례미사 때마다 복음으로 듣는 `최후의 심판 이야기`(마태 25, 31-46)를 묵상하다가 화들짝 놀란 적이 있다. 한 인간의 전체적인 삶을 심판하는 절대 절명의 시간, 예수가 제시한 기준은 단 한 가지였다. 재산도 학벌도 업적도 아니었다. 자신을 위해 얼마나 쌓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남을 위해 베풀고 나누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가장 보잘 것 없는 이에게`라는 단서가 붙은 것을 보면, 그나마 보답을 바라지 않는 순수하고 진실된 사랑만 인정받는 모양이었다.
 그때에는 얼마나 당혹스럽고 불만스러웠는지 모른다. 그 기준이 너무 불공평하고 편협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하느님의 본질이 사랑이며, 그것을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임을 깨달아가면서 고개가 끄떡여지기 시작했다. 적어도 그분을 닮으려면, 이 방법을 터득해야 하는 것이고, 그래야만 그분과 함께 살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모양이었다.
 그동안 보아왔던 그 많은 친지와 교우들의 임종장면도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남들과 불화(不和) 속에 살았던 고통을 고백했고, 진실로 그들을 사랑해 주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세상을 마치곤 했던 것이다.
 죽음 너머까지 가지고 갈 수 있는 것, 그리고 하느님을 대면했을 때 그분께 내어놓을 수 있는 것, 그것은 순수하고 진실된 사랑뿐이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08-03-02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5. 18

시편 17장 15절
저는 의로움으로 주님의 얼굴을 뵈옵고, 깨어날 때 주님의 모습으로 흡족하리이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