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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따라 떠나는 신앙여행] 9-골방과 신독(愼獨)

가식을 벗어던질 '골방'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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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섭 신부(가톨릭대 신학대 학장, 동양철학)


 서울 대신학교 신학생들은 3학년 때부터 독방을 사용한다. 1, 2학년 때 공동생활을 하면서 그토록 바라고 기다렸던 독방이다. 그러나 막상 독방생활이 시작되면 많은 학생들이 당혹해하거나 어쩔 줄 몰라 한다.
 더구나 저녁기도 후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이어지는 대침묵 시간들을 홀로 그리고 신학생답게 잘 보내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은 수행임을 깨닫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더욱 그러하다. 어쩌면 그들이 후에 사제로서 살아갈 수 있는 내적인 힘을 얼마나 축적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바로 이 `독방 훈련`을 얼마나 성실하게 수행했는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 삶의 가장 중요한 바탕은 성실(誠實)함이고, 그것은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유학 경전인 「대학」(大學)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대학」의 이른바 `그 뜻을 성실히 한다`는 것은 스스로 속이지 않는 것이니…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홀로를 삼가는 것이다"(大學所謂誠其意者 毋自欺… 故君子 必愼其獨也. 「誠意章」). 또한 다산(茶山)에 의하면, `홀로를 삼가는 것`은 하늘을 알 때 가능하다.
 다산은 「중용자잠」(中庸自箴)에서 "하늘을 아는 것이 수신의 근본이며, 하늘을 알아야 성실할 수 있다. 하늘을 아는 자는 그 홀로를 삼갈 것이며, 그 홀로를 삼가는 것은 성실한 것이다"(知天爲修身之本者 知天以後能誠也 知天者愼其獨 愼其獨則誠也.)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홀로를 삼간다`(愼獨)는 것은 무슨 뜻일까? 성리학의 전통적인 해석은 `남이 보지 않는, 자기만이 혼자 기거하는 공간`에서도 모든 일을 삼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마치 많은 이들이 보고 있듯이….
 그러나 다산의 의견은 다르다. "신독의 공부는 혼자 있을 때나, 고요한 장소에서만 하는 것은 아니다. 신독의 공부는 자기만이 혼자 아는 일에 삼가기를 극진히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생각과 행동을 통하여 언제나 상제(上帝)를 마주 대한 듯이 조심스럽고 경건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신독이다"(茶山, 「心經密驗」).
 예수도 산상설교를 펼치면서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마태 6,5-6)하고 가르치신다.
 여기에서 골방이 시사(示唆)하는 것은 `신독`(愼獨)의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하나는, 남에게 보이고 드러내기 위해 하는 기도는 자신을 속이는 일이라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사람들을 의식하기보다 삶의 근원이 되는 하느님을 더욱 깊이 만나라는 것이다.
 결국 내 자신과 하느님을 진실하게 만날 수 있는 곳, 그 곳이 골방이며, 그러한 만남 안에서 그분과 함께 조심스럽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신독의 삶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순절은 그동안 우리가 겹겹이 지녀왔던 가식들을 벗어던져야 하는 시기이고, 그것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나만의 `골방`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내가 신독(愼獨)과 연관해서 늘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문장이 있다. 송대 학자인 사마온공(司馬溫公)의 말씀이다. "내가 남보다 뛰어난 것은 없지만, 평생 동안 한 일 가운데 남에게 이야기하지 못할 것이 하나도 없었을 뿐이다"(吾無過人者 但平生所爲 未嘗有不可對人言者耳). 실로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어떻게 살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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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8-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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