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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따라 떠나는 신앙여행] 18 - 둘째 단계: 묵상과 숙독(熟讀)

묵상, 잘게 씹어 그 맛을 느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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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섭 신부(가톨릭대 신학대 학장, 동양철학)


내가 성경이나 경전의 독서법을 이렇게 지루하도록 소개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그동안 사제로 살아오면서 내게 많은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언제부터인가 가장 소중한 것은 이것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경건하게 성사를 집행하는 것 그리고 하느님 말씀에 깊이 머물며 그분이 얼마나 좋으신지 맛 들이는 것이다. 아직도 잘 안되지만 끝까지 이런 능력과 은총을 주시도록 청하고 싶다.
 렉시오 디비나의 둘째 단계는 묵상으로, 이것은 하느님 말씀 안에 숨은 진리를 깨닫기 위해 적극적으로 인간의 이성과 정신을 사용하는 능동적 단계를 말한다. 귀고는 이 단계를 입에 넣은 음식을 씹어 분해하는 것에 비유했다.
 주자의 독서법에서는 이것을 `숙독`(熟讀)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많은 분량에 걸쳐 자세히 소개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몇 가지 중요한 특징들만 살펴보자.
 먼저 경전을 읽는 중요한 세 가지 수칙을 제시한다. "무릇 글을 볼 때는 조금씩 보면서 숙독하는 것이 첫째이고, 천착(穿鑿)하여 주장을 세우려고 하지 않고 단지 반복해서 체험하려는 것이 둘째이며, 몰두하여 이해하되 효험을 구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 셋째이다. 이 세 가지는 배우는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한다"(大凡看文字, 少看熟讀, 一也. 不要鑽硏立說, 但要反覆體驗, 二也. 埋頭理會, 不要求效, 三也. 三者, 學者當守此. 「朱子語類」, 讀書法).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조금씩 깊이 읽는 것, 자기 생각에 빠지지 말고 반복해서 느끼는 것 그리고 깊이 생각하여 이치를 깨우치되 이 글을 읽어 깨달은 것을 어디에 쓸까 혹은 어떤 이득을 챙길까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글 자체에 잠기는 것이다.
 또 주자는 귀고와 같은 비유를 들어 숙독(熟讀)을 설명한다. "무릇 독서는 모름지기 숙독해야 한다. 숙독하면 글의 이해도 저절로 정밀해지고 깊어진다. 정밀해지고 깊어진 뒤에 이치를 저절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마치 과일을 먹는 것과 같다. 처음에 과일을 막 깨물면 맛을 알지 못한 채 삼키게 된다. 그러나 모름지기 잘게 씹어 부서져야 맛이 저절로 우러나고, 이것이 달거나 쓰거나 감미롭거나 맵다는 것을 알게 되니, 비로소 맛을 안다고 할 수 있다"(원문생략. 「朱子語類」,위의 책)
 그러나 숙독(熟讀)의 의미를 실감나게 표현한 것은 다음과 같은 주자의 말이다. "무릇 책을 볼 때는 우선 깊이 읽어서 책의 말이 모두 자신의 입에서 나온 듯하고, 다음으로 정밀하게 사유해서 책의 뜻이 모두 자신의 마음에서 나온 듯해야 깨닫는 것이 있게 된다"(大抵觀書先須熟讀, 使其言皆若出於吾之口, 繼以精思, 使其意皆若出於吾之心, 然後可以有得爾.「朱子語類」,同上).
 결국 숙독(熟讀)이란 경전의 말씀을 잘게 씹어서 마치 그것이 내 입에서 나온 말처럼 느껴질 만큼 익을 때까지 읽는 것이요, 정밀하게 생각한다(精思)는 것은 그 말씀의 뜻이 마치 나의 내면에서 나온 것처럼 느껴지도록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야 그 안에 담긴 뜻을 제대로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 된다.
 그동안 우리는 어떻게 성경을 읽었을까? 어쩌면 너무 쉽고 가볍게 읽은 것은 아닐까? 그 말씀들이 지닌 맛을 느끼지도 못하면서 그저 겉으로 드러난 문자의 의미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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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8-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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