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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따라 떠나는 신앙여행] 기도와 관상, 유학자들도?

아무런 장애 없이 하느님과 마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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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섭 신부(가톨릭대 신학대 학장, 동양철학)


이제 렉시오 디비나의 마지막 단계들인 기도와 관상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자.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독서가 묵상에 사용할 자료를 제공해 주며, 묵상이 찾아야 할 바를 더 주의 깊게 숙고하는 것이라면, 기도는 마음이 하느님께로 들어 올려지는 것이며, 기도가 갈망하는 보물 즉 관상의 감미로움을 청하는 것이다. 그리고 관상은 영적 갈증을 느끼는 영혼이 천상적 감미로움이라는 이슬로 흠뻑 취하게 되는 단계이다.
 그렇다면 유학자들도 이러한 단계들이 가능했을까? 물론 아니다. 더구나 우리처럼 최고 존재자와의 위격적인 만남이나 일치를 추구하는 과정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들도 `독서`(讀書)와는 다른 영역으로 우리와 비슷한 경지의 수양과정을 지니고 있다. 율곡 선생은 「격몽요결」(擊蒙要訣)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일이 있으면 이치로서 일에 대응하고, 글을 읽을 때는 성실하게 이치를 궁구하며, 이 두 가지를 제외하고는 정좌(靜坐)하여 내 마음을 잘 거두어서, 고요하게 분심잡념이 없게 하고, 늘 깨어 있어 혼매(昏昧)한 곳으로 빠지지 않아야 한다"(有事則以理應事, 讀書則以誠窮理, 除二者外, 靜坐收斂此心, 使寂寂無紛起之念, 無昏迷之失可也. `持身章`). 참 단순한 삶이다. 일하거나 글을 읽거나 그 외의 모든 시간은 고요히 앉아 마음을 수양하는 그런 삶인 것이다.
 성리학자들의 이러한 수양법은 불교나 도교의 영향도 받았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시경(詩經)이나 서경(書經)의 여러 구절들을 깊이 숙독하는 데서 이끌어낸 것이다.
 예를 들면 시경의 이런 구절들이다. "상제가 너를 굽어보시니 네 마음을 두 가지로 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지 말고 근심하지 말라. 상제가 너를 굽어보신다."(上帝臨女 無貳爾心; 無貳無虞 上帝臨女. 「詩經」)
 송대 학자들은 이 구절들을 숙고하면서 이렇게 주해하고 있다. 정자(程子)는 "공경하지 않음이 없으면 상제를 대할 수 있다."(無不敬 可以對越上帝)고 말하고, 구산양씨(龜山楊氏)는 "그 홀로를 삼가는 것이 하늘에 계신 상제를 대할 수 있는 것이다"(愼其獨 所以對越在天也.)고 주석하고 있다. 즉 이 구절들에서 `대월상제`(對越上帝) 또는 `대월재천`(對越在天)의 경지를 이끌어내고, 그것을 위한 조건으로 `신독`(愼獨)과 `무불경`(無不敬)이라는 수양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에 관한 다산(茶山)의 설명을 들어보자. 그래도 다산은 천(天)이나 상제를 영명(靈明)한 주재자(主宰者)로 해석하고 있어, 우리 입장과 가깝기 때문이다. 그는 말하기를, "경천 경신(敬天 敬神)은 정좌의 공부지만 반드시 마음과 생각을 묵묵히 운회(運回)하기도 하고 혹 천도(天道)를 묵상하며 신(神)의 섭리를 궁구하기도 하고 혹 옛 허물을 반성하거나 혹 새로운 결심을 세워야만이 정심(誠心)으로 경천(敬天)하는 것이 된다"(원문생략. 「心經密驗」).
 여기서 다산은 정(靜)과 경(敬)을 엄격히 구분하면서, 敬이란 무심(無心)을 위한 정좌가 아니라 상제를 묵상하거나 상제 앞에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관상(觀想)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다산에게 있어 敬은 대상이 있는 敬이요, 단순한 도덕적 수양방법이 아니라 대월상제(對越上帝)하여 상제를 밝게 섬기는(昭事上帝) 방법이 된다.
 대월상제(對越上帝), 아무런 장애 없이 하느님을 마주 대하는 것이다. 홀로 있을 때를 삼가고, 언제 어디서나 경(敬)의 태도를 지니는 높은 경지에서…. 우리의 관상(觀想)과는 어떻게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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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8-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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