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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따라 떠나는 신앙여행] - 24 식별(識別)과 집중(集中)

하느님 것에 대한 식별과 그것에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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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소개했던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에 관한 주자의 설명은 본래 주자가 쓴 「中庸章句 序」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 문장은 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면 무조건 외워야 했던 명문(名文)으로, 송대 성리학에서 수양론의 기본 구조를 형성하는 데 바탕이 됐다.
 기억을 되살려 다시 정리해 보자. 인간의 마음은 하나이지만 그 안에는 인심과 도심이 섞여있다. 인심은 인간의 형체와 기운에서 나온 사사로운 욕심이고, 도심은 하늘이 부여해준 아름답고 올바른 본성이다. 그래서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한 것이다. 마치 사도 바오로가 자신 안에 `하느님의 법`과 `또 다른 법`이 있어 도대체 자신을 알 수 없다고 고백한 것과 같다. 그런데 여기에서 유학의 수양론은 시작한다.
 인심은 위태로우므로 그것을 다스리는 방법은 잘 살피는 것(惟精)이다. 정(精)에 대해 주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정(精)은 인심과 도심 사이를 살펴 섞이지 않게 하는 것이다"(精則察夫二者之間而不雜也). 우리의 영성신학의 개념으로 말하면 `식별`(識別)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것이 하느님의 작용과 활동이고, 어떤 것이 인간의 사사로운 욕심에서 나온 생각인지 잘 분별하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중용(中庸)에서 말하는 택선고집(擇善固執)의 관점에서 말한다면 올바른 식별을 통해 선을 선택하는 `택선`(擇善)의 과정이 될 것이다. 유학은 이러한 모든 과정을 자신의 사사로운 욕심을 제거하는 `거인욕`(去人慾)이라는 수행 방법으로 설명하고 있다.
 반면 도심은 은미하여 드러나지 않으므로 그것을 잡기 위한 수양 방법은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것(惟一)이다. 주자는 일(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일(一)은 본심의 올바름을 지켜 잃지 않게 하는 것이다"(一則守其本心之正而不離也).
 다른 말로 표현하면 집중(集中)하는 것이다. 내가 오래 전 안식년을 하면서 한 달 피정을 할 때, 나의 피정 지도신부도 끊임없이 강조했던 것이 `집중하라`는 것이었다. 특히 `하느님과 하느님의 모든 것`에 관해 집중하면서 그 안에 머물라고 했다. 그 과정을 통해 그동안 얼마나 내가 나 자신에 집중하면서 살아왔는지 느끼고, 하느님께 집중했을 때 만날 수 있는 은총들을 체험하라는 것이었다.
 사실 동양의 모든 종교들의 수양방법, 그 핵심은 본질적인 것을 지키고 그것에 집중하는 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중용의 택선고집(擇善固執)의 관점에서 본다면 올바르게 선택한 것을 끝까지 놓지 않고 지키는 `고집`(固執)의 과정이 된다. 또한 유학은 이러한 수행과정을 하늘의 본질적인 모습을 내면에 늘 간직하는 `존천리`(存天理)의 개념으로 수렴한다.
 주자는 더 나아가 이러한 수양을 통해 "반드시 도심으로 하여금 항상 일신(一身)의 주인이 되게 하고, 인심이 매 번 그 명령을 따르게 한다면, 위태로운 것은 편안하게 되고, 은미한 것은 드러나게 되어"(必使道心常爲一身之主 而人心每聽命焉 則危者安 微者著. 「中庸章句 序」) 중용의 경지에 다다르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도 인간 마음 수양의 최고의 경지는, 우리의 내면에서 하느님이 마음껏 활동하시고 작용하시도록 우리 자신을 그분께 내어드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서는 하느님 은총도 필요하겠지만, 더욱 절실한 것은 인간의 끊임없는 수양이다. 즉 순간마다 자신의 내면에 대한 깊은 성찰과 식별을 통해 하느님 말씀과 움직임에 집중할 때 비로소 그러한 은총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식별과 집중, 그것이 관건이다. 하느님 것에 대한 식별 그리고 하느님께만 집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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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8-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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