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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문학의 징검다리] 2- 다리 저는 사람

박광호(모세, 시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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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라한 추억의 끝자락에는 망각의 강이 있다. 내가 체험했으되 기억이 되살아나지 않은 유아시절이다. 그러나 내 인생 편력을 이야기하면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내용이 이 대목이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유난히 함께하셨기 때문이다.
 나는 1943년 3월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적 어머니에게서 들은 바에 의하면, 돌을 맞은 내가 시골 할머니 댁에 다녀와서 까닭 없이 울어댔다고 한다. 처음에는 오른쪽 발을 바닥에 딛지 못한 채 괴로워하더니 샅에 염증이 생겼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그제야 한의원에 간다, 병원에 간다, 어머니 발에 불이 붙었다. 그러나 시일이 흘러도 차도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에서도 발병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오늘날 같으면 엑스레이 한 장으로 병증을 알아냈을 터인데, 당시는 일본 강점 치하여서 의술이나 의료장비가 부실했다. 그래서 모두들 염증이 생긴 샅에만 신경을 썼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어느 한의사에 의해 엉덩이가 화농이 되었음을 알았다. 즉시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목숨을 건졌으나 완치된 것은 아니었다. 그때까지도 원인을 알지 못한 채 다만 고름을 제거했을 뿐이다. 대퇴부 관절이 탈골되어 발병했음을 알게 된 것은 나중 일이었다. 필경 돌날 어른들 앞에서 재롱을 부리다가 그리 되었으리라 짐작한다.
 고름은 네 살이 되어서야 멎었다. 그러나 새로운 증상이 나타났다. 내가 걸을 때마다 다리를 절었던 것이다. 내 기억 저편에 있는 유아시절은 이처럼 뒤죽박죽이 되었다. 운명의 수레바퀴가 어린 육신을 모질게 짓밟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먼저 내가 듣게 된 것은 절름발이라는 비속어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놀림감이 된 나는 정상인과 다른 자신을 깨달았다. 더욱이 내 걸음을 흉내 내며 들려주는 그 말들이 나의 가슴을 얼마나 후볐는지 모른다.
 이 절름발이라는 말은 오늘에 이르도록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다. 나 자신이 장애인이면서도 여전히 듣기 싫다.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니어도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다리를 저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라 하더라도 지체장애인의 인격을 비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 성경에서는 `다리 저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여기에 덧붙이면, 장애인과 전혀 상관없는 말에 대단한 표현을 하는 양 절름발이를 내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이를테면, 무엇이 상대적으로 부족할 때 절름발이라 한다. 세상에 하고많은 말을 두고 구태여 이 말을 써야 하는지, 그들의 양식이 의심스럽고 얄밉다.
 아무튼 나는 신체적인 놀림 때문에 매일 눈물바람이었고, 그로 인해 어머니 가슴에 못을 박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고자질을 듣고 우시는 어머니를 본 다음부터는 더 이상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도 어머니께 잘못을 저지르는 기분이었다.
 그 무렵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 채 겉돌았다. 그들의 놀이에 방해가 될지언정 아무런 도움이 안 되어서다. 자연히 웃음을 잃은 채 내성적인 성격이 되었으며, 유달산이나 학교 동산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혼자만의 시간은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내가 어떤 처지에 있으며,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하고 골똘하게 생각했다. 일찌감치 자아에 눈뜬 것이다. 그뿐 아니라, 자연 속에서 위안과 평화로움을 발견했다. 마음 둘 곳 없는 소년에게 자연은 진솔한 벗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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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8-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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