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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문학의 징검다리] 3 - 문학의 씨앗이 싹트다

박광호(모세, 시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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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과제물 가운데 하나가 일기쓰기였다. 그때 처음으로 일기를 쓰게 되었다. 매일 일기를 쓴다는 것이 싫지 않았다. 내가 겪은 일을 그대로 적는 초보 단계였지만, 한참 쓰는 동안 변화가 생겼다. 비슷한 내용을 피하면서 빈칸을 남기지 않으려고 하루 일을 자세하게 쓰기 시작했다.
 자기 생활을 쓴다는 것. 그것이 나에게 적잖은 희열을 주었다. 나는 방학이 끝나자 일기장을 선생님께 제출했고, 선생님께 칭찬을 들었다. 이에 신명이 나서 그 후 줄곧 일기를 썼다. 이것이 삼십대 초반까지 계속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문학의 씨앗이 이 일기로써 비롯되었다. 시의 진실성이나 소설의 재미가 일기를 통해 얻어지고, 문장이 매끄러워진 것도 그 까닭이리라. 그리고 시의 호흡이 길다거나 수십 권의 장편소설을 쓴 원동력이 오랫동안 일기를 쓴 끈기에 있지 않은가 추측한다.
 여하튼, 그 후 나는 백일장에 나가 입선하는 등 싹수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제야 친구들이 나에게 접근했으며, 자기네 패에 끼어주었다. 심지어 학급 축구시합에 골키퍼로 참여시키기도 했다. 이제 외로워하거나 서러워하지 않아도 되었다.
 어머니는 친구들과의 원만한 관계를 누구보다 반겼다. 아들의 얼굴에 수심이 가시고 명랑해진 것을 다행스러워했다. 친구들이 집에 오면 과자와 과일을 내놓으며 친하게 지내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아들의 손에 용돈을 쥐어주었다. 친구들과 구김살 없이 지내길 바라는 모정에서였다.
 초등학교 시절, 나에게 정해 놓고 찾아오는 슬픔이 있었다. 연례행사인 봄가을 운동회와 소풍이 그것이다. 어느 날 소풍을 간다는 공지가 나면, 그날부터 배낭을 짊어지고 소풍 가는 자신을 그리면서 밤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번 소풍에 꼭 가려니, 하고 마음을 다그쳤다.
 그러나 번번이 부모님의 거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왜 못 가게 하는지 못내 야속했다. 내가 잔뜩 부어 이층의 내 방으로 가면, 아버지가 따라오셨다. 그리고 다리가 부실하니 멀리 떨어진 곳에 다녀오면 건강을 해친다고 설득하면서, 지폐를 손에 쥐어 주셨다. 무엇이든 사먹으라는 것이다.
 당시 우리집은 학교에서 가까운 길갓집이었다. 그래서 학생들이 의기양양하게 노래 부르며 가는 광경을 유리창으로 지켜보았다. 그러면 급우들이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내 이름을 부르기도 했다. 비로소 그들과 함께 하지 못하는 현실에 가슴이 시리고 눈시울이 뜨거웠다.
 나는 해마다 찾아오는 소풍이 싫었으나 정작 그날이 오면 소풍을 가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러다가 4학년 가을소풍 때 돌발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소풍 대열이 사라진 후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따라가자! 지금 나서면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 거야! 여태까지는 부모님이 가지 말라면 못 가는 것으로 알았지만, 한 번 마음을 정하자 두려울 것이 없었다.
 마침 아버지가 광주 출장 중이었다. 나는 어머니 몰래 집에서 나와 걸음을 재촉했다. 이미 대열이 시야에서 떠난 지 오래되었으나 어림짐작으로 철길을 따라 목적지에 당도했다. 선생님과 급우들의 놀람과 반가움이라니!
 이 소풍은 학창시절 처음이자 마지막 소풍이었다. 그날 귀가한 나는 어머니의 꾸중을 듣고, 무모한 행동을 다시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렇지만 잘못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가슴에 맺힌 소원을 풀었다는 기쁨이 자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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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8-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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