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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문학의 징검다리] 5 - 고통 커질수록 문화의 꿈도 커져가고

박광호 (모세, 시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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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의 사고로 어머니를 여읜 나는 의사 지망을 접었다. 내 장래가 불확실했던 것이다. 가까운 친척들은 내가 의사 되는 것이 돌아가신 분의 뜻을 받드는 것이라고 했지만 여러 여건이 용납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어머니만한 추진력이 주위에 없었다. 사고 일 년쯤 지나 맞이한 새어머니가 애정을 주었으나 어찌 생모만 할 것인가. 더욱이 생모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나에게는 새어머니가 자리할 곳이 없었다. 그래서 얼마동안 어머니라는 말을 하지 않아 분란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나는 교내 웅변대회에 학급대표로 나가게 됐다. 예선을 거쳐 선정됐으니 조금은 자질이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웅변원고를 마련해 아침마다 유달산에 올라가 고모부의 지도를 받아 연습했다. 주변에서는 내가 입상할 것이라고 부추겼다.
 웅변대회가 있는 날, 학교 강당은 전교생으로 만원을 이뤘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됐다. 단상에 오르자 강당이 온통 시끌벅적했다. 다리를 절면서 등단한 내 모습이 아이들 눈에 외계인으로 보인 것인가.
 나는 웅변이 시작되면 진정되려니 기대하면서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이…." 하고 음성을 높였다. 그러나 소란은 가시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시끄러웠다. 선생님들은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결국 시종일관 떠들썩한 청중을 향해 끝까지 외쳐대고 단상을 내려왔다. 그 동안 열심히 준비한 결과가 이것인가 싶어 허망했다. 교실로 돌아온 나는 원고를 발기발기 찢으며 다시는 웅변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목포중학교에 합격했다. 당시 시험을 치르는 때여서, 겨우내 몇몇 친구들과 합숙한 결과에 기쁨이 컸다. 그런데 입학식을 마치고 돌아올 때 오른쪽 대퇴부가 따끔했다. 처음 발병했던 환부에 통증이 온 것이다.
 환부는 염증과 더불어 며칠 만에 통통 부어올랐다. 병원에서는 제대로 치료하려면 대수술을 받고 3년간 깁스를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장기간 입원함으로써 생기는 학업의 공백을 염려했다. 그래서 화농된 부분만을 수술하고, 집에서 매일 치료하면서 학교에 다녔다.
 이후 학교 문예반에서의 활동은 나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장차 내가 소설가가 되리라는 소문이 친구들 사이에 퍼졌다. 그것이 다른 학교 학생들에게까지 알려져 그들의 방문을 받기도 했다. 나는 어린 마음에 우쭐거렸다.
 병세는 갈수록 악화됐다. 그 해 여름에는 보행이 어려울 정도였다. 방학을 이용해 민간요법 치료를 받았다. 칼로 환부를 째고 그곳에 독성이 있는 심지를 찌르는 방식이었다. 방학이 끝났으나 낫지 않았고, 무척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하루는 담임선생님을 비롯한 세 분 선생님이 문병 오셨다. 선생님들은 나의 인생에 결정적인 격려의 말씀을 하셨다. "광호야, 지금 병고를 겪는다 하여 절대로 낙심하지 마라.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음악가 베토벤은 귀가 들리지 않았어도 불후의 작품을 남기지 않았느냐? 또 헬렌 켈러는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삼중고 속에서 교육가로 유명했다.…광호 너에게는 남들이 갖기 어려운 문학이라는 재능이 있지 않느냐? 현재 우리나라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분이 없다. 네가 열심히 노력하여 첫 수상자가 되어라."
 이 말씀은 나에게 희망이 되고 열정이 됐다. 몇 년 후 노벨문학상의 실체를 알기까지 오로지 이 목표가 삶을 지배했다. 그때의 결심이 한평생 문학의 길로 나아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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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8-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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