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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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적 삶으로의 초대Ⅱ] (53) 하느님 뜻과의 조화 (17)

오만 끊어 버리기/ 자신이 창조주인양 착각하며 살아가는 인간들/ 하느님 뜻 깨닫고 매일 꾸준히 묵상·기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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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적 삶을 살아가고 싶은가? 하느님의 뜻과 조화되는 삶을 살고 싶은가?

만약 이 질문에 “예!”라고 대답한 사람이 있다면 지금 당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오만 끊어 버리기’가 그것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자신이 창조주인양 살아간다. 우리는 말씀 그 자체가 아니다. 말씀에 응답해야 할 존재일 뿐이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다. 빛이 생겨라 하자 빛이 생겼다. 그리고 그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와 함께 계신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의 말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오인하는 경향이 있다. 오만하다. 마치 창조주인양 우리의 말만 하고 있다.

창조주는 그냥 말만 하면 된다. 빛이 생겨라 하면 빛이 생긴다. 말씀 자체가 완전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수 없다. 하느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어떤 말을 해도, 마음 내키는 대로 말씀하셔도 그 하나하나가 완전하고 지고하다. 하지만 우리는 책임 있는 말을 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든 하느님 뜻을 깨닫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가운데서 하느님 말씀의 뜻을 분별해야 한다. 그 분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내 말을 하지 않는다. 하느님의 말을 한다. 그러면 나 자신의 역사 두루마리에 하느님의 말씀이 기록된다. 하느님은 어쩌면 먼 훗날 우리에게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세상에 나가서 내 말을 하라고 했는데, 너는 네 말만 실컷 하다가 왔느냐.”

하느님의 말씀을 살고, 그 말씀을 전한 완벽한 모델이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맞는 말씀만 했다. 그런데 우리는 막말을 한다. 내 말을 한다. 이래선 곤란하다. 나는 원형이 아니라 모상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이러한 원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구약 이래로 아브라함과 모세, 예언자 등을 통해 끊임 없이 알려주셨건만 아직도 우리는 모르고 있다. 계속해서 인간 잘난 멋으로 살고 있다.

하느님은 지금도 우리를 당신과의 조화로운 삶(공명의 삶)으로 초대하신다. 당신의 말을 전하라 하고, 당신의 말씀대로 살 것을 요청하신다. 모세의 십계명, 예언자들의 예언 등이 모두 하나로 정리된다.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는 합치하고, 이웃에게는 연민을 가지고 세상과 융화하고, 세계에 스스로의 역량을 드러내야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원리들은 하느님께서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심어 놓으신 것이다. 이것을 알도록 하기 위해 수천년간 인류 역사 안에서 끊임없이 영감을 주셨던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이 알아듣지 못하자, 결국에는 독생자 예수께서 세상에 오셔서 합치, 연민, 융화 속에서 참된 역량을 발휘하는 방법을 가르칠 지경에 이르렀다.

가르치고 또 가르쳤는데도 아직도 인간은 그 가르침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스승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학생이 학생처럼 굴지 않고 선생님처럼 행동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그 학생은 하나도 배울 수 없을 것이다.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인간이 창조주라고 착각해선 곤란하다. 인간은 창조자의 뜻을 따라 응답만 하면 된다. 문제는 창조자의 뜻을 파악하는가, 그렇지 못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창조자의 뜻을 들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면 내 말이 아닌, 하느님의 말이 들린다. ‘나’가 아닌, ‘하느님’으로의 중심 이동이 필요하다.

조선시대에는 여성이 꼼짝 못하고 살았다. 남성들이 권력과 기득권을 지켰기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고통 받아야 했다. 이는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해서다. 가정의 중심은 남편이 아니다. 아내도, 자녀도 아니다. 진정한 가정의 중심은 형성하는 신적 신비 그 자체다.

어쩌면 우리는 하느님의 섭리를 믿지 않고 오만하게 인간의 힘으로만 살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많은 이들이 질병을 얻을까 노심초사하지만, 사실 그 모든 질병을 주시는 것도, 그리고 다시 거둬 가시는 것도 하느님이다. 태양이 하루만 동쪽에서 떠오르지 않아도, 바이러스가 조금만 변형되어도 우리는 한순간에 죽는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은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갈 생각을 해야 한다. 태양이 동쪽에 떠오르는 것, 오늘 아침 눈을 뜰 수 있는 것 모두가 엄청난 은총이다.

건강을 위해 식단표를 짜고 다이어트 운동을 계획하는 그 정성의 조금이라도 덜어서, 겸손의 덕을 쌓는 노력에 보태는 것은 어떨까. 다이어트 운동 효과가 하루아침에 나타나지 않듯이, 영성적 삶을 위한 노력도 하루아침에 나타나지 않는다. 꾸준함이 필요하다. 매일 꾸준히 영적인 삶을 위해 겸손히 청하고 노력하면, 멀지 않는 시기에 오만의 지방 덩어리가 사라진 아름다운 영화(靈化)된 몸, 영화된 정신, 영화된 마음을 구현해낼 수 있을 것이다.


정영식 신부 (수원교구 군자본당 주임)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2-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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