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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적 삶으로의 초대Ⅱ] (65) 하느님 뜻과의 조화 (29) 세상 안에 살아 계신 주님과 더불어 살기

혼 뺏겨 사는 우리, 주님 주신 풍요로움 못 느껴/ 하느님 뜻에 조화될 때 확고한 삶 살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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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한 단어로 정의하라면?

나는 ‘풍요로움’이라고 말한다. 세상을 보라. 얼마나 풍요로운가. 세상은 풍요로운 공기로 가득 차 있다. 그 공기 속에서 참으로 풍요로운 생명들이 살아간다. 바닷속에는 또 얼마나 풍요로운 생명들이 있는가. 과일의 종류는 또 얼마나 많은가. 곤충의 종류는 일일이 꼽기도 힘들다. 풍요로움은 생명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바닷가의 모래알을 보라. 한 알 한 알이 모두 다르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이 이렇게 풍요롭다면, 하느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또 얼마나 풍요로울 것인가. 하느님은 늘 새롭고, 강렬하고, 역동적인 것들을 매일 우리에게 풍요롭게 선물하신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하다. 이같이 풍요로운 선물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풍요로움을 만끽하지 못하고 살고 있다. 왜 그럴까?

혼을 뺏겨 살아가기 때문이다. 눈이 맑지 않기 때문이다.

영성생활은 시력을 점검하고, 자신의 시력에 적합한 안경을 착용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눈이 흐리다면 안경을 써야 한다. 흐릿하게 보이는데도 그냥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안경만 쓰면 잘 보이는데 쓰지 않고 있다. 좀 더 잘 봐야 한다. 그것이 영성생활이다.

많은 이들이 지금도 깜깜한 밤길을 걷고 있다. 그래서 힘들어 한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저 무작정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안타깝다.

조 카나한이 연출하고 리암니슨이 주연한 영화, ‘더 그레이’(The Grey, 2012)에서는 비행기 조난을 당한 후 생존한 사람들이 설상가상으로 늑대에게 쫓기는 내용이 나온다.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늑대를 피해 달아났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영화 막바지에 주인공이 도착한 지점은 늑대 소굴이었다. 많은 이들이 세상의 고통을 피해 도망 다니지만 결국 도착점은 고통의 중심부다. 걷는 길의 방향이 잘못되면 우리는 고통의 굴레를 벗어날 길이 없다. 제대로 보고, 제대로 길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신념 있게 꾸준히 걸어야 한다. 나 자신의 아집에만 사로잡혀 살아가다 보니 신비를 보지 못한다.

하느님은 바닷가에서 놀고 계신다. 산에서도 놀고, 인간 안에서도 노신다. 그렇게 하느님은 당신의 창조물들과 뒹굴고 계신다. 그런데 정작 인간은 그 풍요로움 안에서 살아가면서 하느님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안경을 써야 한다. 제대로 보고 하느님과 함께 세상 안에서 뒹굴며 놀아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영성생활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이런 ‘풍요로움 속에서 뒹굴며 놀기’가 가능할까. ‘경외’가 중요하다. 경외의 눈으로 보면 하느님이 세상 안에서 놀고 계신 것이 보인다. 하느님을 참으로 경외해야 한다. 그러면 저절로 ‘경탄’이 터져 나오게 된다. 경외하고 경탄하면 확고함, 용기, 부드러움, 인내, 효과성, 개방성, 순명, 꾸준함, 신실함과 같은 여러 성향들이 고구마 줄기 엮듯이 줄줄이 나오게 된다.

이 세상의 풍요로움은 나와 동반관계다. 풍요로움 따로, 나 따로가 아니다. 풍요로움 자체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하느님이 나를 위해 주신 선물이다. 이러한 동반관계를 경외 속에서 깨달을 때, 그것이 바로 공명(하느님 뜻과의 조화)의 삶이다.

우리는 더 이상 구약성경의 신관에 사로잡혀 살 필요가 없다. 바짝 엎드려 ‘나 죽었다’하며 하느님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하느님은 이제 새로운 삶의 방식을 나에게 요구하고 있다. 하느님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 풍요로움을 만끽하며 하느님 품안에서 뒹굴어야 한다. 하느님과 더불어 어깨동무를 하고, 어깨를 나란히 하고 콧노래 부르며 걸어야 한다.

내가 집을 향해 가는 그 길에 하느님이 함께하신다. 성체 조배실에 갈 때 하느님은 함께 하시고, 방 청소를 할 때 함께하신다. 성당에 갈 때, 직장에 갈 때, 산에 갈 때, 바다에 갈 때, 늘 함께하신다. 어떤 장소에서 어떤 일을 하든지 그곳에 하느님이 계신다.

하느님 뜻과 조화되는 삶을 살 때, 풍요로움을 만끽할 때, 우리는 무기력해지지 않는다. 수동적이지 않게 된다. 의존적이지 않고 확고한 삶을 살아간다.

물론 인간이라면 미지의 지역들로 여행하는 모험 앞에서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무엇이 두려운가. 내가 걸어가는 그 길의 모래 하나하나에 하느님이 존재하신다. 길 옆 꽃에도, 풀 잎 하나에도 하느님이 계신다. 코로 들어오는 공기 입자 하나에도 하느님은 존재하신다. 세상이 풍요로운 것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그 풍요로움을 내 안에 가득 채워야 한다. 왜 배고픔을 두려워하는가.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다. 우리는 그저 그 밥 상 앞에 앉기만 하면 된다


정영식 신부 (수원교구 군자본당 주임)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2-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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