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182) 영혼을 울리는 감동 (2)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감기에 시원한 맥주라. 별로 조합은 되지 않지만, 할아버지 수사님은 시원스레 맥주 한 캔을 다 드시더니 두꺼운 내복 바람으로 이불 밖을 나오셔서 카세트테이프 하나를 찾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당신 이불 쪽으로 오시어 머리맡에 두신 낡은 카세트에서 어떤 영성 테이프를 빼내시고 그 카세트테이프를 집어넣으셨습니다. 그리고 음악 재생 단추를 눌렀습니다.

순간, 유명한 가수 ‘사이먼과 가펑클’의 ‘Bridge Over Troubled Water’ 노래 전주가 흘러나왔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 수사님은 잠옷을 갖춰 입으시더니 당신 방의 등불을 끄고, 취침 등 하나를 켜신 후 요 위에 구부정하게 서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빙그레 웃으시더니 “사실은 내가 이 노래를 불러 주려고 맥주 사오라 그랬지”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노랫말이 흘러나오자, 립싱크로 가사와 입 모양을 비슷하게 벙긋거리셨고 마치 실제 그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과 같은 몸짓을 하면서 그렇게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한 곡이 끝나자 당신이 좋아하는 팝송 2, 3곡 정도를 계속해서 틀더니 좀 전과 같은 모습의 립싱크로 저에게 불러 주었습니다.

어둠이 깊이 내려 고요한 침묵만 흐르는 공간. 약간 열린 창틈으로는 맑은 바람들이 드나들고 깡마른 체구의 허리가 굽은 음악가가 낡은 요를 무대 삼아 오래된 이불을 무대 장치로 취침등 불빛의 은은한 조명을 받으며 노래하는 모습! 노래를 부르시던 내내 한평생 수도생활을 통해 모든 것을 내려놓으신 그 삶에서 나오는 우아한 미소와 온화한 표정. 비록 립싱크였지만 웬만한 가수들보다 열성적으로 두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해 뻗기도 하고, 한손 한손 천천히 펴지며 모든 이를 다 포용한 듯한 자세를 취하시던 모습.

저는 그 순간 왜 그리도 눈물이 나던지. 이웃을 제 몸처럼 사랑하기 위해 지금 함께 곁에 사는 사람에게 먼저 최선을 다해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몸소 실천하며 가르쳐주시던 수사님의 마음. 하느님 때문에 모든 것을 봉헌한 삶을 사시면서도 이제 당신께 남은 것이라고는 어깨동무하며 이 길을 함께 걷는 형제들뿐이라던 수사님. 수사님의 말씀들이 방 안의 천장 가득 푸른 빛으로, 영원한 천국의 별빛처럼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그랬습니다. 며칠 동안 감기 몸살이 더 심해지자 형제들에게 부담 주기 싫다던 수사님은 지치고 힘든 몸으로 그깟 감기 몸살을 이겨내고 싶어 더 강한 몸짓으로, 안간힘으로 이겨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 스스로 연출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은 음악회’를 열었던 것입니다.

단지 맥주를 사다 드린 심부름으로 지상 최고의 음악회에 유일하게 초대된 저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좌석에 앉아 원로가수의 공연을 끝까지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백열등 불빛 아래 잠옷 턱시도를 입고 코맹맹이 소리, 쉰 목소리의 그윽한 음성으로 노래하던 어느 노수도자의 공연. 정말이지 눈물 콧물로 감상을 했고 그날의 감동 때문에 한동안 잠 못 이루었습니다.

‘나도 과연 저렇게 살 수 있을까.’ 정말 가슴 뭉클한 그날 밤, 공연이었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3-03-17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4. 29

1티모 6장 12절
믿음을 위하여 훌륭히 싸워 영원한 생명을 차지하십시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