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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189) 공짜 좋아하는 공짜 없는 세상 ②

가치없는 공짜 물건과 맞바꾼 소중한 삶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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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이분들의 정체가 드러났습니다. 바로 어느 지역 홍삼을 홍보하러 온 분들이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중국 인삼’과 ‘한국 인삼’의 차이와 구별하는 법을 생생히 가르쳐주었습니다. 하지만 제게 중요한 것은 홍삼이 아니라 ‘공짜 쌀라면’이었습니다.

이런 제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들은 계속해서 홍삼 잘 달이는 법도 설명해 주었습니다. 눈치를 챈 사람들이 한 명씩 자리를 떴습니다. 그런데 왠지 오기가 발동한 저는 기어이 쌀라면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무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는데, 또 다시 검은 봉지를 나누어주었고, 그 안에는 쌀로 만든 비누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비누의 효용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그러다가 홍보하는 총각이 간단한 질문을 하자 저도 모르게 그 질문에 대답도 해 버렸습니다. 그 총각은 ‘아저씨, 참 대답을 잘 하시네요!’하면서 홍삼 한 봉지를 개봉하더니 마시라고 반 컵 정도를 따라 주었습니다. 그 때 정장차림을 한 중후한 신사 한 분이 오더니 ‘오늘 갓 달인 우리 지역 홍삼을 홍보하는 기간이니 30만원 한 상자를 사시면 한 상자를 더 준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주변에 보니 다들 가셨고, 마지막으로 저와 목욕가방을 갖고 있는 아가씨, 단 둘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몇 마디를 하던 신사는 그만 가버리고, 총각들도 포기를 했는지 쌀라면 5개들이 한 봉지를 찢더니 쌀라면 하나를 꺼내 검은 봉지에 담아 그 아가씨와 저에게 주면서 ‘홍삼 안 사실 거죠’했습니다. 그리고는 사람이 없어 이만 하겠다며 주변 정리를 했습니다.

순간 ‘아! 속았구나!’싶은 마음에 짜증이 났지만 그래도 받을 건 다 받았고, 검은 봉지만 대여섯 개 갖고 이발소에 가 이발을 한 다음 수도원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후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실 그날 ‘공짜’로 받은 그 모든 것은 결국 공짜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공짜로 쌀라면을 바라다가 오전 시간을 날려버렸기 때문에 어쩌면 더 큰 손실을 보았던 것입니다. 아무런 땀과 노력없이 쉽사리 손에 넣을 수 있는 것, 바로 그 ‘공짜’라는 것으로 인해 제 인생의 시간을 그냥 날려버린 것입니다.

평소에는 가까운 분들이 뭔가 선물을 주려하면 될 수 있는 대로 더 이상 소유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이발하러 가다가 ‘공짜 라면’이라는 말에 홀리듯 꽂혀 3시간 정도 시간을 허비해 버린 내 삶!

큰 시련이나 혹은 식별의 문제 앞에서는 나름 잘 생각하고, 분명하게 선택하고, 온전하게 투신하려고 노력하며 살았는데, 그만 ‘공짜’라는 단어 하나에 와르르 무너지는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좀 출출하기에 야참으로 쌀라면 하나를 끓여먹었고, 결명자차를 마신 다음, 쌀비누로 얼굴을 씻고, 녹차가루 팩을 하며 자리에 누었습니다. ‘청빈’의 마음에 생고생하며 얻은 공짜 물건, 그래도 귀하게 잘 쓰고 싶은 마음에 억울해도 버리지는 못해서 말입니다.

아무튼 얼굴에 팩을 하는 동안, 앞으로 좀 더 치열하게 노력하는 삶을 살아 보겠다고 다짐을 해보았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3-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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