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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193) 신부(神父) 조카의 결혼식

신랑 아버지 자리로 떠밀린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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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신부님이 조카의 결혼식에 다녀올 일이 있다며 미사를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부탁한 날짜는 제가 갈 형편이 안 돼 다른 신부님께 부탁을 드렸고, 그 신부님이 대신 그 본당 미사를 드려 주었습니다.

이후 아는 신부님에게 안부인사와 함께 조카 결혼식에 잘 다녀왔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신부님은 “사실은 조카 녀석이 일반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린다고 하기에 축하는 해주지만 갈 생각은 없었어. 그런데 그 조카가 어릴 때, 내가 돌본 적이 많았거든. 누나랑 매형이 어린 조카를 내게 맡겨 놓고 출장을 간 적도 있었지. 그럴 때면 조카의 기저귀를 갈면서 집을 지키며 돌봤었어. 그러다 초등학교 때 매형, 즉 그 녀석 아버지가 갑자가 돌아가셨지. 그 후 누나는 혼자 조카 둘을 키웠고, 그러다보니 나도 조카들을 무척 많이 아꼈기에 비록 일반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한다지만 안 가기가 뭐 하더라. 관면혼배도 했고. 결국은 결혼식장에 갔는데 가기를 잘한 것 같아. 내심 뿌듯해지는 거 있지!”

“그래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잖아. 그런데 조카의 아버지가 없었다면 예식장에서 누가 부모석에 앉았어?”

그러자 그 신부님은 겸연쩍은 듯 “아니, 내가 거기 앉으려고 한 건 아닌데 거의 떠밀리다시피 앉게 되었어. 결혼식이 시작될 무렵 식장에 도착했기에 조용히 가족석에 앉으려고 하는데, 다른 가족들의 소리없는 압력에 이끌려 할 수 없이 부모석에 누나랑 나란히 앉은 거지. 곧바로 결혼식은 시작되고 다른 사람과 바꿀 수도 없고!”

“푸하하, 그럼 신랑 아버지 역할을 한 거야? 모르는 사람에게는 이상했겠다!”

“그런 셈이지. 그런데 그 자리에 앉아 있으니 조카 녀석이 어떻게 자라고, 학창시절과 사회생활을 어떻게 했으며, 결혼까지 이르게 된 배경까지도 주마등처럼 펼쳐지는 거 있지!”

“그럼 양가 부모 인사랑 사진도 함께 찍었어?”

“신기한 건 말이야. 양가 부모 사진을 함께 찍는데, 내가 마치 조카의 아버지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은 거 있지! 자리가 책임감을 준 건가? 폐백도 받고, 아무튼 그날 신랑 아버지 역할하느라 혼났어. 그러면서 자식 가진 부모님들이 자녀 혼사문제에 있어서 준비부터 과정 하나하나, 얼마나 많은 신경을 쓰는지 알게 되더라.”

“큰누나는 어땠어?”

“어, 큰누나! 결혼식 끝나고, 큰누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며 ‘누나, 그동안 수고 많았어’하고 말해줬지. 사실 우리가 평소 가족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잘 안하잖아. 그런데 그날은 왠지 하게 되더라. 그랬더니 누나가 참았던 눈물을 글썽거리며 우는 거 있지! 그날 나도 뿌듯했는데, 누나야 오죽 많은 것이 생각났겠어.”

뜻밖에 신랑의 부모석에 앉아 결혼식에 참석한 신부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살면서 떠밀리다시피한 상태에서 경험하게 된 일들로 인해 세상살이를 간접적으로나마 알게 되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날 하루 떠밀려 신랑의 아버지 역할을 했지만, 어쩌면 그것이 앞으로 더 좋은 영적 아버지가 될 수 있는 밑바탕이 될 것 같았습니다. 떠밀리는 것도 때론 운명인가 봅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3-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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