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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120) 꿈이 강요되는 사회(2)

‘현수막’이 결정한 어느 청년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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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청년과 ‘꿈’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던 도중, 이러한 이야기를 해준 것이 생생하게 기억이 났습니다.

“어릴 때 되고 싶은 것이 많았습니다. 그 꿈들을 이루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었지요. 노력의 결과로 나름 좋은 고등학교,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같은 반 동급생들과 함께 평범한 학생으로 남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소위 말하는 ‘일류 대학’에 다른 학생들보다 먼저 입학을 하게 되었어요. 다음 날 학교 정문 ‘현수막’에 내 이름을 붙여 놓고, ‘경축’이라는 말을 써 놓았는데 사실 얼마나 민망하고 부끄러웠는지. 그 후 친구들이 ‘한 턱 내라’며 친밀감을 표현해 주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들이 나를 피하는 것 같았어요. 아니, 나는 먼저 대학에 합격했기에 시간적 여유가 있었고, 다른 친구들은 아직 대학 입학시험을 치르기 위해 준비를 해야 했기에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아무튼 ‘현수막’에 붙여진 내 이름, 왠지 특별한 존재가 된 듯한 그 기분은 생각해 보니 ‘달콤한 독’이었어요. ‘현수막’을 통해 일류 대학, 일류 학과를 들어갔다는 이유 하나로 나의 모든 꿈은 틀에 박힌 꿈이 되었고 나의 마음을 무척 힘들게 만들었어요. 그 ‘현수막’이 붙은 후로 나의 꿈은 그 ‘현수막’에 박혔어요. 바뀌면 안 되는, 아니 바뀔 수 없는 고정적인 무엇인가로 내 삶이 박히게 된 것 같아요. 결국 제 탓이기도 하겠지만.”

젊은 날의 꿈이 ‘현수막’을 통해 일류 대학, 일류 학과로 굳어버려 자신의 삶이 재단되어 버린 듯 감당하기 힘든 부담감이 점점 마음의 짐이 되어 마침내 강박적 사고는 마음의 병을 앓게 만들고, 10여년을 힘들게 살아왔던 그 청년의 모습. 지금도 생각하면 안쓰러울 뿐이었습니다.

문득 그 고등학교 ‘현수막’을 확 떼어내고 싶었습니다. ‘현수막’에 있는 그 이름의 학생을 만나서, 일류 대학이 전부가 아니고 일류 학과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의 꿈을 더 찾아보라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자랑 같지도 않은 ‘현수막’에 연연하지 말고, 학교당국의 얄팍한 생각에 속지 말라고 이야기 해주고 싶었습니다. 내일 당장 교무실로 찾아가 ‘현수막’을 떼어주기를 정중히 당부하라고 부탁하고 싶었습니다. 언제든지 ‘현수막’하고 관계없이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고유한 특권이 있음을 확인시켜 주고 싶었습니다.

문득 나 혼자만의 헛소리로 들리겠지만 제발 학생들의 싱싱한 꿈을 ‘대학이나 학과’로 가두거나, 획일화하거나, 재단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더욱이 수학능력평가시험, 그 하루의 성적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전부 평가되지 않는 그러한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하루 빨리, 일류 대학이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그 젊은 꿈을 가진 영혼들이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맞는 것을 즐겁게 배우고 기쁘게 익혀 보다 ‘건강한 사회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1-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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