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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 46. 평화는 연대의 열매이다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는 ''인간 중심 정치''의 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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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가 끝났다. 어떤 이는 환호했을 것이고, 어떤 이는 탄식을 쏟아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이는 침착하게 그 결과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환호했든, 탄식했든, 침착했든 모두 괜찮다. 다만 여전히 현실의 짐이 너무 무거워 신음조차 내지 못하는 이웃의 강요된 침묵에 마음이 아프다.

 정치가 선거기간에만 신음조차 내기 힘든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럼 여태까지 그 목소리를 틀어막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하루의 요란한 선거와 힘없는 이들에 대한 정치권의 오랜 침묵 사이 간극을 메우기가 어렵다. 어쩌면 하루의 선거는 사회의 약자도 섬김을 받을 수 있다는 환각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장엄한 주권재민선언을 잠깐 느낌으로써 오랜 무거운 침묵을 잊는 그런 환각 말이다.

 #정치생활 토대와 목적은 인간이다
 사람은 본성으로 사회적이며 정치적이다(「간추린 사회교리」 384항). 그런데 만일 사회(공동체)와 정치가 우리에게서 사라지고 있다면 어떨까. 누군가는 현대사회의 특징 가운데 하나를 분업화라고 했다. 주로 경제영역에서 인용되는 특징이지만, 이를 사회에 적용해보자. 어쩌면 공동체의 철저한 해체, 사회의 해체현상 앞에서 우리는 고립된 것은 아닐까. 우리에게 공동체ㆍ상생ㆍ공생ㆍ동반ㆍ배려ㆍ관심ㆍ이해와 같은 낱말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부끄러운 고립화를 인정하기 싫거나 혹은 감추기 위한 수사(修辭)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정치는 어떤가. 정치의 궁극은 `자기지배`, 즉 자기 운명을 자기 스스로 지배하는 것이라 했다. 우리 교회는 이를 "정치생활의 토대와 목적은 인간이다"(384항)고 밝힌다. 당연히 정치공동체(국가)는 근본적이며 양도할 수 없는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함으로써 인간 존엄을 인정하고 존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 현대에서 공동선 실현은 인간의 권리와 의무를 보장함으로써 드러난다(388항)고 가르친다.

 그런데 만일 자기 운명을 자기 스스로 지배할 수 없는 사람이 많다면, 그 존엄성을 존중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면, 정치는 과연 정치일까? 단 하루 단 한 번의 투표행위로 나의 운명을 스스로 다스리게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역설적으로 정치의 실종이 아닐까.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는
 교회는 민주주의를 높이 평가한다. 이 체제는 확실히 시민에게 정치적 결정에 참여할 중요한 권한을 부여한다. 또 피지배자들에게는 지배자들을 선택하거나 통제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평화적으로 대치할 가능성을 보장해준다. 따라서 "교회는 사적 이익이나 이념적 목적을 위하여 국가 체제를 점령하고 폐쇄된 지배 집단을 형성하는 것을 도와주면 안 된다"(406항)
고 강조한다.

 그런데 혹시 단 하루의 투표를 통해 지배자들을 선택하기는 했는데, 그 지배자를 통제할 수가 없다면 어떡할까. 혹은 그 지배자가 사적 이익이나 이념적 목적으로 권력을 독점하여 소수 지배집단을 형성함으로써 절대다수 시민을 고통으로 내몬다면 어떡할까.

 정치의 실종은 그 토대이자 목적인 인간의 실종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인간 실종은 인권 실종을, 인권 실종은 인간 존엄함의 실종으로, 인간 존엄함의 실종은 하느님 실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사람이 목적이며 토대여야 할 정치생활이 사람을 사적 이익이나 이념적 목적에 동원되는 수단으로 전락시키며 하느님마저 도구화시킨다. 수단과 도구로 전락한 인간은 불필요하면 언제든지 폐기된다.

 선거가 끝났지만, 정치 주변으로 밀려난 수많은 이들의 처지는 여전하다. 오히려 떠들썩한 선거 승패로 더 멀리 밀려났는지 모른다. 헤아릴 수조차 없이 많은 이들이 곳곳에서 `생명과 평화`를 외치고 있지만, 그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아니, 그 목소리마저 빼앗겼는지 모른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목소리를 빼앗긴 가장 약한 이들 가운데에서 교회의 창립자 그리스도를 섬기자(「교회헌장」, 8항). 그리고 연대(連帶, solidarity)하자. 연대성은 가깝든 멀든 수많은 사람의 불행을 보고서 막연한 동정심이나 피상적 근심을 느끼는 무엇이 아니다. 오히려 도덕적 덕목이다. 공동선에 투신하겠다는 강력하고도 항구적인 결의인 까닭이다.

 "연대성은 타인을 착취하는 대신에 이웃의 선익에 투신하고 복음의 뜻 그대로 남을 위하여 `자기를 잃을` 각오로 임하는 것"이기에 공동선을 지향하는 사회적 덕목이다(193항). 연대의 결실은 평화다(102항).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2-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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