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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 <52> 설을 맞으며,제발 함께 살자

설은 사회성 회복 다짐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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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는 사람은 유일무이한 존재다. 온 우주 곳곳을 샅샅이 뒤져도 또 다른 `나`는 지금 여기 있는 `나`말고는 없다. 세상 그 무엇과도 교환하거나 대체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지금 여기 있는 나다. 한 사람 한 사람 그렇게 유일하기에 귀한 존재다.

 이 유일함과 귀함을 이유로 인간의 존엄함을 말할 수 있다. 내가 유일무이한 존재인 것처럼, 지금 내 옆에 있는 그도 유일무이하기에 나의 귀함, 나의 존엄함만큼이나 그의 귀함과 존엄함도 무겁다.

 나의 삶과 그의 삶의 무게는 터럭만큼도 차이 없이 똑같이 귀하다. 유일무이함으로 자유를 말할 수 있으며, 똑같은 존엄함 때문에 평등이란 말을 할 수 있다. 피부색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성이 다르고, 직업이 다르고, 신분이 다르더라도 모든 사람은 자유롭고 그 존엄함에서 평등하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인간의 유일무이함과 귀함에서 나온다. 여기서 이 유일무이함을 인간의 `개체성`이라고 한다.

 #인간은 홀로 살 수 없다
 그렇지만 나는 홀로 한순간도 살 수 없다. 태어나는 것도 `나`스스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부모가 있어야 나라는 사람이 비로소 있게 된다. 내 부모의 부모, 그 부모의 부모가 있었기에 나라는 사람이 오늘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라는 사람이 있어야 나 다음 세대의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렇게 보면, `나`는 과거의 누군가, 곧 부모, 형제, 친지, 조상이 있어 있게 된 것이고, 미래의 누군가를 있게 한다.

 사람은 유일무이한 존재이기는 하지만, 과거와 미래의 수많은 사람과 함께 사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이 자리의 나는 또 다른 자리의 어떤 수많은 사람들, 세상의 수많은 동식물, 하다못해 미생물과 무생물하고 함께 살고 있다.

 이렇게 나는 유일무이한 존재이긴 하지만, 동시에 시간적으로는 과거와 미래의 수많은 사람과 자연과 함께, 공간적으로는 세상 곳곳의 수많은 사람과 자연과 함께 공존하는 존재다. 이를 사람들은 인간의 `사회성` 혹은 `공동체성`이라고 부른다. 사람의 이 개체성과 사회성은 우리가 벗어버리거나 무시하거나 외면할 수 없는 필연적 조건이다.

 #모두가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자
 우리의 설은 바로 이 사회성을 기념하는 날이기도 하다. 가족과 정을 나누는 것도, 돌아가신 부모, 형제, 친지, 조상을 기억하는 것도, 바로 사람의 이 사회성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요즘 이 사회성과 공동체성이 급속히 붕괴되고 있다. 나만 알고 남은 배려하지 않는 태도, 나만 살고 남은 죽어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 태도 때문이다. 조금 범위를 넓혀서, 우리 동네, 우리 지역, 우리 나라만 알고, 다른 동네, 다른 지역, 다른 나라는 생각하지 않는 태도, 우리만 살고, 남은 죽어도 괜찮다는 태도, 이런 분위기가 우리 사회를, 이 세상을 휩쓸고 있다.

 이를 자유라는 말로, 경쟁이란 말로, 세계화라는 말로 그럴듯하게 포장하고는 한다. 자기만 살고, 남은 죽거나 살거나 개의치 않아도 된다는 것에 불과하다.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나만 살려고 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자기만 살려고 할 것이고, 이는 살기 위한 투쟁을 불러오고, 그렇게 되면 둘 중 하나만 살아야 하기에 누군가는 죽어야 한다. 우리 동네, 우리 지역, 우리 나라만 살려하는 것처럼 남의 동네, 남의 지역, 남의 나라도 잘되려고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쪽은 살고 한쪽은 죽어야만 한다.

 이를 두고 어느 사상가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 했고, `인간은 인간에게 서로 늑대다`라고 묘사했다. 그런 세상을 야만의 상태라고도 했다.

 설은 사회성과 공동체성을 다시 기억하고 회복하려는 다짐을 새롭게 하는 날이다. 함께 살 길을 찾으려고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며, 돌아가신 분을 기억하는 것이다.

 현대의 시민국가 시대에 함께 살 길을 찾는 이 일을 가족단위, 지역단위 차원
에서만 찾을 수가 없다. 국가 차원에서도 세계 공동체 차원에서도 `지구인이 함께 사는 길`을 찾아야 한다.

 국가 각 분야 지도자들의 사리사욕이 과거보다 훨씬 위험하고 훨씬 더 큰 해악을 끼칠 수 있다. 그들이 사리사욕에 빠지지 못하도록 한 사람 한 사람 깨어있는 시민의식이 예전보다 더 절실하다. 설이다. 한 해를 시작하며 공동체성, 사회성을 회복하도록 우리 모두 마음을 새롭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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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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