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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현 신부의 생태영성으로 보는 샬롬과 살림의 성경읽기] (5) 광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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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이 처음으로 가신 곳은 광야였다. “그 뒤에 성령께서는 곧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셨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또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마르 1,12-13)

도시가 인간 문명과 문화의 중심지라면, 광야는 거기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 곧 자연이다. 광야는 대부분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곳, 가기를 두려워하는 곳이다. 광야는 경작되지 않은 곳이라기보다는 경작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곳, 메마른 땅, 불모지 곧 황무지다.

성경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주된 공간인 팔레스타인은 동쪽과 남쪽에 광야로 둘러싸여 있다. 구약성경에서 광야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광야에서 생활하였다. 그래서 이집트와 광야는 서로 대조적인 장소이다. 이집트는 고대 문명이 꽃피워졌던 곳이었다. 신명기 4장20절은 이집트를 ‘도가니’라 부른다.

“너희는, 주님께서 도가니 곧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셔서 오늘 이처럼 당신의 소유로 삼으신 백성이다.”

도가니의 참을 수 없는 뜨거움은 이스라엘의 견딜 수 없는 노예 생활을 의미한다. 쉴 새 없이 요구되는 노예의 노동은 도가니를 위한 가장 값비싼 연료와도 같았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이집트 탈출은 불타는 도가니의 파라오와 불타는 떨기나무의 하느님 사이의 맞대결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이집트 탈출 후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온갖 시련을 겪고 하느님을 체험한다. 광야는 그 이전의 모든 버팀목, 비본질적인 것들, 사치품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광야는 비어 있는 곳이고 고독의 장소이다. 그래서 그곳은 하느님 현존의 장소이고 그분을 만나는 곳이다.

이렇듯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하느님을 만난다. “너희는 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인도하신 모든 길을 기억하여라. 그것은 너희를 낮추시고, 너희가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너희 마음속을 알아보시려고 너희를 시험하신 것이다. 그분께서는 너희를 낮추시고 굶주리게 하신 다음, 너희도 모르고 너희 조상들도 몰랐던 만나를 먹게 해 주셨다. 그것은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다.”(신명 8,2-3) 그래서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하느님에 대한 적나라한 신앙으로 사는 것을 배운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이 당신의 백성이 되도록 광야로 이끄신다. 이스라엘은 어떻게 하느님의 특별한 백성이 되고 다른 민족들에게는 증인이 되는지를 광야에서 배운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모든 창조 세계가 하느님의 것임을 배운다. 광야에서 하느님의 선물로 받은 율법이 이것을 가르쳐준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창조 세계를 이집트의 방식인 억압과 탐욕이 아닌 우주적 정의에 따라 변화시키는 것을 배운다. “이제 너희가 내 말을 듣고 내 계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나의 소유가 될 것이다. 온 세상이 나의 것이다.”(탈출 19,5)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하느님의 창조 세계를 통하여 우주적 정의의 가치를 배우게 된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소유임을 알게 되는 지식은 이스라엘이 정의와 자비를 실천하도록 추동한다. 이집트를 탈출한 가난한 사람들인 이스라엘은 마침내 하느님이 원하신 ‘대조 사회’(contrast-society)가 되도록 초대된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다른 창조 세계를 만난다. 그곳에서 모든 피조물에 대한 하느님의 관심을 경험한다. 그리고 인간이 이 세계의 전부가 아님을 발견한다. 즉 인간도 이 넓은 자연 세계, 창조 세계의 한 부분임을 깨닫는다. 광야는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구원 드라마의 배경을 단지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광야는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더 넓은 창조 세계로 지평을 넓힌다.

송창현 신부는 1991년 사제수품 후 로마 성서 대학원에서 성서학 석사학위(S.S.L.)를, 예루살렘 성서·고고학 연구소에서 성서학 박사학위(S.S.D.)를 취득했다.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과 성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송창현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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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2-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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