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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현 신부의 생태영성으로 보는 샬롬과 살림의 성경읽기] (16) ‘함께 아파하기’의 에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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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을 뒤따르는 것, 즉 그분처럼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예수님의 삶을 우리가 다시 살아가는 ‘예수 살이’로써, 그분의 비전(vision), 그분의 정신, 그분의 가치를 살아가는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질문하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새로운 삶의 방식인 에토스(ethos)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

예수님의 이 에토스는 하느님의 대자대비(大慈大悲)를 닮아 살도록 우리를 초대하신다. 결국, 예수님이 제시하신 새로운 삶의 방식은 ‘하느님 닮기’, ‘하느님 살이’인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표현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어머니의 자궁과 관련이 있다. 즉 ‘자비’(慈悲)란 어머니가 자신의 자궁 속에 있는 아기에 대해 느끼는 마음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하느님 자비의 화신(化身)이시다. 신약성경의 복음서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실천에서 자비, 연민(憐憫), 혹은 측은지심(惻隱之心)의 에토스를 발견한다. 예수님의 이 에토스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이 바로 ‘가엾은 마음이 들다’는 동사이다.

예수님은 군중(마르 6,34 8,2), 병자(마르 1,41), 눈먼 이(마태 20,34), 외아들을 잃은 나인 과부(루카 7,13)에 대하여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리스어에서 이 동사는 ‘사람의 창자, 내장’이라는 단어와 관련이 있는데,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불쌍한 마음이 드는 것, 속마음이 절절한 불쌍함으로 움직여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표현은 영어에서는 compassion(컴패션) 혹은 sympathy(심퍼시)이다. 이 단어들을 어원적으로 살펴보면 ‘함께(com, sym) + 느낌(passion, pathy)’의 의미가 있다. 즉 동정(同情), 공감(共感)을 가리킨다. 따라서 예수님에게 있어 에토스의 핵심은 바로 공감이다. 이 공감을 달리 표현하면 ‘함께 아파하기’(라틴어로는 cum+passio)이다.

예수님의 ‘함께 느낌’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함께 느끼기, 즉 다른 사람과 ‘함께 아파하기’인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가르치고 몸소 실천하셨던 에토스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함께 아파하기’다.

따라서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를 다른 사람과의 공감의 삶으로, ‘함께 아파하기’의 삶으로 초대하신다. 그것은 새로운 삶의 방식, 즉 새로운 에토스이다. 예수님은 ‘함께 아파하기’의 새로운 에토스를 제시하셨다. 그것은 분리와 배제의 에토스를 뛰어넘는 새로운 대안이다. 그리고 그것은 경계들로 갈라진 사람들의 공동체를 회복하고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예수님의 정신과 가치가 살아 있는 자리이다.

예수님의 에토스는 자비의 에토스, 공감과 ‘함께 아파하기’의 에토스이다. 이것은 할례, 음식과 정결 규정, 안식일 준수 등으로 경계들을 설정했던 유다인들의 분리와 배제의 에토스와는 명백히 구별된다. 당시, 유다인들의 정결의 정치학(politics of purity)을 비판하시는 예수님은 분리와 배제를 뛰어넘는 자비, ‘함께 아파하기’의 새로운 사회적 패러다임을 대안으로 제시하신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기존의 질서와 가치에 도전하고 비판하실 뿐 아니라 새로운 질서와 가치를 하나의 대안(代案, alternative)으로 제시하고 실천하셨다. 예수님은 그 대안적 질서와 가치가 실현되는 새로운 공동체 운동을 시작하셨던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님의 ‘함께 아파하기’ 에토스는 우리에게 하나의 새로운 사회적 비전(social vision)을 제시한다. 분리와 배제가 아니라 ‘함께 아파하기’의 새로운 사회적 패러다임(social paradigm)을 가리킨다. 자비의 에토스, 공감이라는 삶의 방식, ‘함께 아파하기’의 사회적 비전,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대안이고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또 다시 선택할 오래된 새 길이다.


송창현(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2-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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