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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현 신부의 생태영성으로 보는 샬롬과 살림의 성경읽기] (24) 정의(正義)와 정의(定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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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의에 대한 예수님의 비전(vision)이 잘 드러나는 가르침은 마태오 복음서 20장 1-16절의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이다.

이 비유의 주제는 하늘나라의 정의(正義)이다. 비유에서 포도밭 주인은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고용한다. 그는 이른 아침에 나가 일꾼들과 하루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 그들을 고용한다. 주인이 약속한 정당한 삯인 한 데나리온은 날품팔이꾼과 그의 가족이 하루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돈이다. 그 후 아홉 시, 열두 시와 오후 세 시 쯤에도 장터에 나가 하는 일 없이 서 있는 이들을 고용하며 정당한 삯을 주기로 약속한다. 장터란 그리스어로 아고라이다. 이 비유에서의 광경은 광장 혹은 장터라고 부를 수 있는 너른 터에서 선택을 기다리는 일용 노동자들을 포도밭 주인이 고용하는 상황이다.

주인이 오후 다섯 시 쯤에도 장터에 나가 보니 또 다른 이들이 서 있었다. 오후 다섯 시쯤이란 일몰이 다가오는 시각이다. 그래서 주인이 그들에게 “당신들은 왜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 서 있소?” 하고 물으니,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하고 대답하였다.(7절)

하루해가 저물 때까지 고용되지 못해 일용 노동자와 그 가족의 생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주인은 그들에게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라고 말한다. 여기서 주인의 관대함이 잘 드러난다.

저녁때가 되자 포도밭 주인은 맨 나중에 온 이들부터 한 데나리온을 주도록 한다. 맨 먼저 온 이들은 더 받으려니 생각했지만 역시 한 데나리온을 받는다. 그래서 그들은 불평을 터뜨린다.

그러자 주인은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라고 말한다. 그렇다. 주인은 정의를 행하였다. 왜냐하면, 주인은 맨 먼저 고용된 이들과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였기 때문이다. 불의라는 불평에 대해 주인은 합의한 정당한 삯을 지불했다고 주장한다.

15절에서 주인은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라고 말한다. 이 문장을 직역하면 “내가 선하다고 당신 눈이 악한 것이오?”이다. 여기서 주인의 선함과 불평자의 악함이 분명한 대조를 이룬다. ‘악한 눈’이란 시기와 질투, 관대함의 부족을 의미한다. 잠언 22장 9절은 “어진 눈길을 지닌 이는 복을 받으리니 제 양식을 가난한 이에게 나누어 주기 때문이다.”라고 가르친다.

맨 먼저 온 이들과 주인 사이의 올바른 관계가 깨어진 것은 그들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질투하면서부터이다. 그들은 더 많이 일했으므로 더 많이 받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정의는 철저히 자기중심적이다. 그들의 정의에 따르면 자신의 이익을 가난한 다른 이들에게 주어서는 안 될 것이었다. 그들의 정의는 사실 자신의 질투에 대한 포장에 불과했다. 그들의 정의는 관대함을 제한하는 무기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인이 생각한 정의는 달랐다. 주인은 장터에 나가 하는 일 없이 서 있는 일용 노동자를 고용한다. 주인은 장터에서 고용되지 못한 이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생존의 기회를 주는 자비로운 사람이다. 맨 나중에 고용된 사람은 하루 품삯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일몰이 다가오는 오후 다섯 시에도 고용되지 못해 노동자와 그 가족의 생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주인은 그를 고용하고 한 데나리온을 준다. 주인은 선하다. 그는 가난한 이를 배려한다. 마지막 사람에게도 하루 양식을 보장한다.

이같이 주인의 정의는 마지막 사람에게도 고용의 기회를 주고 동일한 품삯으로써 생계를 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정의는 가난하고 변두리로 내몰린 사람들에 대한 배려이고 그것은 자비, 즉 ‘함께 아파하기’를 통해 실천된다. 정의는 특히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인 선택과 그들을 위한 적극적인 행동을 의미한다. 참된 정의, 곧 하느님의 정의는 자비와 사랑을 통해 실현된다. 이것이 바로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에서 예수님이 제시하는 대안적 비전이다. 이와 같이 정의(正義)는 다시 정의(定義)되어야 한다.


송창현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2-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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