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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현 신부의 생태영성으로 보는 샬롬과 살림의 성경읽기] (30) 다시 읽는 풍랑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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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은 구약성경을 대체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예수님에 대한 신앙의 빛으로 다시 읽는다. 신약의 저자들에게 구약은 하나의 ‘주어진 것’이다. 성경의 생태학적 차원과 관련하여, 신약은 구약의 창조 신학을 전제한다. 그래서 창조에 대해 이미 확립된 구약성경의 이해가 신약성경 안에서 매번 반복되지 않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예수님에 대한 신앙과 그분을 통한 구원은 인간을 다른 창조 세계로부터 분리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약성경은 예수님을 창조 세계의 공동체 안에서, 모든 피조물과의 밀접한 관련성 안에서 표현한다. 인간과 나머지 창조 세계와 관련해 우리가 신약성경에서 발견하는 것은 창조에 대한 구약성경의 이해를 그리스도론적으로 표현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신약성경의 생태학적 차원은 하느님의 나라, 구원, 정의, 평화와 같은 주제적 관심 안에 이미 통합돼 있다.

예수님이 갈릴래아 호수의 풍랑을 가라앉히신 이야기(마르 4, 35-41)는 자연에 대한 통제가 하느님의 질서에 속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이 이야기는 호수의 풍랑을 통해 자연과 인간 사이의 적대적 관계를 묘사한다.

혼돈 세력의 파괴적인 힘은 살아있는 피조물에 고통을 주며 자연 세계 안에서 여전히 활동적이다. 이 파괴적 힘은 하느님에 의해 마침내 평정될 것이다. 하느님은 혼돈의 세계에 평화를 가져온다. 그런데 하느님은 자연의 파괴적 폭력에 대하여 당신의 파괴적 폭력으로써 맞서시지 않는다. 오히려 하느님은 무질서를 평정하고 평화롭게 하신다. 이것이 창조를 다시 새롭게 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이다.

예수님의 풍랑 이야기는 새로운 창조 세계를 예시하고 하느님 나라의 현존을 표시하는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창조 세계 안에서 혼돈의 힘을 평정하신다.

예수님의 현존에도 풍랑을 만난 배 안의 제자들은 겁을 내고 두려움에 떨었다. 두려움은 믿음이 없음을 나타낸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지 못하였다. 구원은 두려움에서 신뢰에로의 변화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40절)

자연에 대한 통제에 인간은 하느님에게 의존적이다. 인간은 단지 피조물로서 그것에 참여한다. 인간은 자신을 하느님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인간은 하느님의 창조 세계 안에서 자신의 한계를 가진다. 전능한 인간이 세상을 마음대로 다시 창조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느님에 대한 찬탈이다. 인간의 불타는 탐욕, 권력에의 의지, 하느님의 참된 창조성에 대한 반항은 결국 질서가 아닌 혼돈을 낳는다.

따라서 이러한 혼돈을 제한하고 창조의 조화를 증진하여 자연의 힘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창조 세계의 공동체 안에서 인간의 ‘피조성’(creatureliness)을 인식하는 것이 요구된다.

예수님의 풍랑 이야기는 현대 문명의 실상을 폭로한다. 현대 세계의 거대한 과학 기술적 계획은 자연에 대한 지배와 통제를 시도한다. 인간은 하느님의 전능에 속한 것을 성취할 수 있다고 여긴다. 인간은 자신의 의도대로 자연을 복종시키고 창조 세계를 개조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기술에 의한 세계의 재창조(re-creation)로써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해방하려는 현대의 거대 담론(meta-narrative)이 생겨났다.

그러나 자연의 힘에 대한 통제는 본질적으로 신적이지 인간적인 것이 아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통제는 오히려 인간 자신과 나머지 창조 세계에 대한 엄청난 재앙이라는 예기치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가 아니라 인간과 나머지 창조 세계 사이의 상호 관련성 안에서 표현된다. 구원은 창조에 대한 대체가 아니라 ‘창조를 다시 새롭게 하기’(renewal of creation)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복음서의 풍랑 이야기는 ‘그리스도론적 생태 담론’(christological eco-narrative)이다.


송창현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3-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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