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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현 신부의 생태영성으로 보는 샬롬과 살림의 성경읽기] (49) 도전과 응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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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연속이다. 이스라엘의 역사 또한 다양한 주변 세력들의 도전과 그에 대한 응전의 연속이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변화하는 국제 정치적 역학 관계 안에서의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도전에 대해 이스라엘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유지하려는 응전의 연속이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남 유다 왕국의 멸망, 예루살렘 솔로몬 성전의 파괴, 그리고 바빌론 유배(기원전 587~538년)는 큰 위기의 순간들이었다. 특히 바빌론 유배 사건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이 바빌론 유배는 고대 이스라엘 역사의 끝인 동시에 제2성전 시대 유다이즘의 모태였다.

바빌론 유배 이후에도 페르시아 시대(기원전 538~332년)를 거쳐 헬레니즘 시대(기원전 332~164년)에 이르러 이스라엘은 큰 위기의 순간을 다시 한번 맞이하게 된다.

기원전 4세기에 알렉산드로스 대왕(기원전 323년에 사망)은 지중해 주변과 중, 근동에 대대적인 정복 사업을 벌였다. 그는 자기가 정복한 지역에 새로운 도시들을 건설하여 그리스 문화를 널리 퍼뜨리려 하였다. 이 과정에서 그리스 문화와 동방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데, 여기서 생겨난 것이 바로 헬레니즘이다. 기원전 332년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팔레스티나를 점령하였다. 이것이 팔레스티나에서의 헬레니즘 시대의 시작이다. 이렇게 제2성전 시대의 유다이즘과 헬레니즘이 만나게 되었다.

팔레스티나에서 유다이즘과 헬레니즘의 갈등은 안티오코스 4세의 통치 시기인 기원전 175~164년 사이에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에서 잘 드러난다.

헬레니즘이라는 도전은 팔레스티나 안에서 다양한 형태의 응전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즉 친 헬레니즘적 경향과 동시에 반 헬레니즘적 경향이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헬레니즘과 갈등을 일으킨 유다이즘의 다양한 반응들은 그 양상에 따라 적극적 협력, 소극적 협력, 소극적 저항, 적극적 저항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유다인중에는 안티오코스 시기의 그리스식 개혁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그리스주의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대사제 야손과 메넬라오스를 비롯한 예루살렘의 신정주의자들이다. 그리고 그리스식 개혁에 자발적으로 순종한 이들도 있었다.

둘째, 새로운 정책에 적극적이지는 않았지만, 소극적으로 협력한 이들이 있었다.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은 강요에 의한 순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셋째, 헬레니즘에 소극적으로 저항한 사람들은 재산의 몰수나 종교적인 이유로 자신들의 거처를 떠난 이들과 비폭력적 저항을 옹호한 이들로 유다이즘의 전통적 가치에 충실했다.

넷째, 헬레니즘에 적극적으로 저항한 이들은 마카베오 항쟁의 주동자들과 지지자들인데, 이들은 폭력적 저항을 선택하였다.

그 후 로마 시대(기원전 63년 이후)에 이스라엘의 역사에는 또 한번의 큰 위기가 닥친다. 기원전 63년 로마 장군 폼페이우스가 예루살렘을 점령하였다.

로마 제국 시대는 세 단계로 나뉘어지는데, 히르카누스 2세(기원전 63~40년) 하의 속국 단계, 헤로데 가문의 통치 단계(기원전 37~기원후 6년), 그리고 로마의 직접 통치 단계(기원후 6~66년)이다. 예수님이 공적 활동을 하실 때에 갈릴래아를 다스렸던 이는 헤로데 대왕의 아들인 헤로데 안티파스였다. 그리고 유다는 로마의 총독인 본시오 빌라도가 다스렸다(기원후 26~36년).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기원후 38년경에 태어나 100년경에 죽은 유다인 역사가였다. 그는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 통치 제 13년, 즉 93~94년에 ‘유다 고대사’라는 작품을 집필하였다. 이 책에서 요세푸스는 기원후 6년에 일어난 갈릴래아 사람 유다가 중심이 된 반란에 대해 서술한다. 이 반란자들은 “하느님만이 주인이시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로마 제국에 저항하였다.

이와 같이 로마 제국이라는 도전은 팔레스티나 안에서 다양한 형태의 응전을 낳았다. 이러한 역사적, 정치적, 종교적 배경 하에서 예수님이 사셨고 활동하셨다. 결국 이 배경에서 예수님과 예수 운동(Jesus Movement)의 독창성과 가치가 드러난다.



송창현 신부는 1991년 사제수품 후 로마 성서 대학원에서 성서학 석사학위(S.S.L.)를, 예루살렘 성서·고고학 연구소에서 성서학 박사학위(S.S.D.)를 취득했다.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과 성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송창현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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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3-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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