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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현 신부의 생태영성으로 보는 샬롬과 살림의 성경읽기] (53) 제 2 성전 유다이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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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성전 유다이즘’(Second Temple Judaism)이란 기원전 538년 바빌론 유배로부터 귀환하기 시작하여 예루살렘의 성전이 재건된 이후 기원후 70년 이 성전이 파괴되기까지의 유다인들의 생활 방식, 세계관, 종교 사상과 실천을 가리킨다. ‘고대 유다이즘’(Ancient Judaism) 혹은 ‘초기 유다이즘’(Early Judaism)이라고도 부르는 ‘제 2 성전 유다이즘’은 다양성을 그 특성으로 가진다.

다양한 종교적 그룹들, 즉 바리사이파, 사두가이파, 에세네파, 젤롯파 등으로 인해 이 시기 유다이즘의 모습은 매우 다양했다. 그래서 ‘제 2 성전 유다이즘’은 단수의 ‘유다이즘’(Judaism)이라기보다는 복수 형태의 ‘유다이즘들’(Judaisms)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그런데 기원후 70년의 예루살렘 성전 파괴라는 상황은 유다이즘의 모습을 새롭게 바꾸어 놓았다. 이 사건은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사두가이파의 몰락을 의미했고, 68년 경 로마 군대에 의해 에세네파의 쿰란 공동체가 파괴되었을 뿐 아니라 제 1차 유다 봉기가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을 말한다.

즉 바리사이파를 제외한 다른 유다 그룹들의 몰락 혹은 쇠락을 의미한다. 따라서 70년 이후의 유다이즘은 바리사이들의 유다이즘, 즉 ‘라삐 유다이즘’(Rabbinic Judaism)이 된다.

‘제 2 성전 유다이즘’의 제도들 중에서 중심을 이루는 것은 예루살렘의 성전과 사제직이다. 사실 기원전 587년의 유다 왕국 멸망과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 그리고 뒤이은 바빌론 유배는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엄청난 상실이요 위기였다.

유배에서 되돌아온 유다인들의 주된 관심사며 과제는 상실의 회복, 과거의 복구와 재건이었다. 이 과제는 솔로몬의 성전 건축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을 통하여 가시화되었다. 그 후 헤로데 대왕에 의해 더 웅장하게 확장되기도 하는 이 성전은 약 5세기 동안 유다이즘 경신례의 중심이 되었다. 그리고 그 성전의 대사제는 동시에 유배 이후 유다 민족의 권위 있는 최고 지도자로서의 역할도 함께 했다.

그러나 우리는 ‘제 2 성전 유다이즘’을 성전과 대사제를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조직된 체제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피라미드 모양의 조직 안에서 성전의 대사제가 그 정점에 위치하고, 그를 중심으로 통일된 종교 사상과 제도를 가진 획일적인 ‘제 2 성전 유다이즘’을 상정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규범적이고 획일적인 단 하나의 일사불란한 유다이즘이라는 것은 당시의 사실과는 거리가 먼 허구의 산물일 뿐이다.

그리고 당시의 유다인들을 아무런 창조성을 가지지 못한 채 단지 과거의 전통만을 고수하는 사람들로 여겨서도 안된다.

그들을 엄격한 율법주의의 굴레에 사로잡혀 살았던 사람들로 생각하는 것은 사실에 대한 왜곡이다. 물론 당시의 유다인들은 과거의 전통에 충실하려 하였으나 동시에 새로운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종교적 상황이라는 긴장과 도전 안에서 전통에 대한 역동적인 해석을 통한 응전을 시도하였다.

한편 제 2 성전 유다이즘을 헬레니즘적 유다이즘(Hellenistic Judaism)과 팔레스타인 유다이즘(Palestinian Judaism)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즉 팔레스티나 바깥에서 살고 있던 유다인들의 종교 현상을 헬레니즘적 유다이즘으로, 이스라엘 땅 안에서 현상을 팔레스타인 유다이즘으로 부르기도 한다.

사실 기원전 332년 알렉산드로스의 점령 이후 팔레스티나는 헬레니즘의 직접적인 영향 아래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헬레니즘적 유다이즘의 범주에 디아스포라의 유다인들을 포함시키고, 팔레스티나의 유다이즘을 그 헬레니즘의 영향으로부터, 혹은 그 오염으로부터 자유로웠던 것처럼 말하는 것은 분명한 오해이다. 오히려 팔레스타인 유다이즘과 디아스포라 유다이즘(Diasporic Judaism)으로 구분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제 2 성전 유다이즘, 특히 팔레스타인 유다이즘은 역사적 예수의 직접적인 배경을 이루고 초대 그리스도교와 신약성경의 뿌리가 된다.



송창현 신부는 1991년 사제수품 후 로마 성서 대학원에서 성서학 석사학위(S.S.L.)를, 예루살렘 성서·고고학 연구소에서 성서학 박사학위(S.S.D.)를 취득했다.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과 성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송창현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3-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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