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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25)가시 상징과 하느님

삼위일체 교리 정립에 역할한 ''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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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근동에서 `가시`는 중요한 요소이자 성경 코드였다. 인류 최초 장편 서사시인 「길가메쉬 서사시」에서도 가시나무는 영생을 가져다주는 존재였다.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다른 근동인들과 다른 것은 독특한 유일신 믿음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글과 말로 쓰인 그들의 하느님 체험은 고대 근동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수천 년간 축적된 고대 근동 문화는 고대 이스라엘 신앙의 밑거름이 됐다.
 
 #예수님의 가시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길을 걷는 동안 로마 병사들은 `유다인의 임금`이라며 조롱했다.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을 보고 빌라도는 `자, 이 사람이오!`라고 말했다. 고난을 받음으로써 인류를 구원하시는 참된 그리스도의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예수님이 가시관을 쓰고 나타나신 이 장면은 제자들에게 인상적으로 남았던 것이 분명하다. 하느님의 아들로 오신 분인 예수님은 황금관을 써도 모자랄 판에 가장 아픈 가시관을 쓰셨다. 가장 아픈 가시관을 쓰시면서 그분이 우리에게 왜 오셨는지 가장 잘 드러나게 됐다. 가시관은 그리스도교 핵심 상징 가운데 하나가 됐다. 예수님에게도 가시관은 그분 신원을 드러내는 중요한 상징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신약성경에도 나타나 있다.

 "죽음의 고난을 통해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신 예수님을 보고 있습니다"(히브 2,9).

 영웅 길가메쉬 또한 죽음을 두려워했지만 결국 영생의 식물인 가시덤불을 찾아낸다. 가시덤불을 움켜쥔 길가메쉬는 진리를 얻기 위해 그 고통도 이겨냈다.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실 때 가시덤불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셨다. 가시라는 상징이 통하는 부분이다.

 신ㆍ구약 성경에 능통했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교부는 구약의 하느님과 신약의 그리스도를 `가시`라는 상징을 통해 성찰하며, 2세기께 이미 삼위일체의 신비까지 접근하는 놀라운 성찰을 보였다. 가시는 삼위일체 교리가 정립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한 셈이다.

 클레멘스는 그의 저서 「교사이신 그리스도」에서 `그분께서는 모세에게 거룩한 장면을 보여주셨습니다. 불타는 가시덤불이 밝게 빛났던 것입니다. 이제 덤불은 가시로 가득 찼습니다.(…) 그분은 맨 처음 가시덤불에 나타나셨으며, 훗날 가시로 둘러싸이게 되신 것입니다. 이로써 이 모든 일이 하나의 동일한 권능께서 하신 일이란 점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분과 그분의 아버지는 한 분이고, 영원한 시작이요 끝이십니다`라고 썼다.

 클레멘스는 한 분이 다른 시대에 같은 형상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을 밝혔다. 이는 삼위일체 이론이 나오기 전이라 의미가 더 크다. 클레멘스는 `가시`라는 단 하나의 상징을 성찰함으로써 가시덤불에 싸인 `성부`와 가시관을 쓰시고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신비를 보여주신 `성자`는 한 분이라는 것을 드러냈다.

 유럽 인쇄술의 혁명을 이끈 구텐베르크의 성경을 보면 성경 지면 곳곳에서 그림을 발견할 수 있다. 이 그림 상징에 가시를 많이 쓴 것을 볼 수 있다. 왜 하느님 말씀인 성경에도 가시를 썼을까. 13세기까지 성경의 테두리 장식이나 성화 테두리에 가시 장식을 자주 썼다. 후대 교회 역사에서도 가시는 그리스도인들의 종교심이 머무는 곳으로 묘사된 것이다.

 영화 `다빈치 코드`에는 가시를 몸에 두르고 다니거나 자신을 학대하며 고행하는 장면이 나온다. 중세시대 고행 전통이다. 그리스도의 수난에 자신을 학대하면서 동참한다는 것은 좋지 않다고 여겨지면서 현대에는 이 같은 수행이 사라졌다.
 
 #성경의 의미
 영화 `이티`의 이야기 구조는 사실 신약성경과 비슷하다. 하늘에서 착한 외계인이 내려왔는데 사람들은 모두 오해했다. 단 마음이 깨끗한 몇몇만 그를 알아봤다. 권력과 힘이 있는 사람들은 더욱 오해해 그를 무시하고 박해했다. 외계인 이티는 온갖 수난과 모험을 겪고 죽었지만 결국 부활했다. 그리고 자신을 알아본 사람들과 함께 하늘나라로 올라간다. 신약성경의 예수 그리스도와 매우 흡사한 모습을 보인다. 신약성경의 이야기 구조를 본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야기가 파급력이 높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모르게 그 같은 이야기에 빠져드는 것이다. 인문학과 예술을 이해하려면 이런 이야기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이야기가 가장 많이 들어 있는 책이 성경이다. 어렸을 때부터 고전의 으뜸인 성경의 이야기를 잘 체득한다면 오늘날 문화를 형성하고 전파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된 다양한 체험을 담고 있는 구약성경은 단일한 책이면서 동시에 복합성을 지닌 도서관과 같은 책이다. 창세기 하나에도 창조 이야기와 노아 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 하나하나가 다른 책이다. 성경에는 `행간`이 많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상상력을 발휘해 더 큰 하느님을 만나도록 열어놓은 책이다. 말씀 안에서 한 구절 한 구절 상상하며 읽다 보면 더욱 풍요로운 신앙생활을 해나갈 수 있다. 구약성경을 읽을 때 다양한 상상력을 갖고 읽어보자.

정리=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은 평화방송 TV 홈페이지(www.pbc.co.kr) 강좌/성경 꼭지에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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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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