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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현 신부의 생태영성으로 보는 샬롬과 살림의 성경읽기] (57) 헤로데의 생일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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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에서는 도시에 기반을 둔 지배 엘리트들이 권력을 독점하고 그것을 통한 사회 통제가 이루어졌다. 지배 그룹의 활동과 통제는 도시와 촌락에 두루 미쳤다. 이 두 영역 모두 제국의 엘리트들에게는 그들의 사회-정치적 지위와 권력을 유지하고 확대시키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였다. 로마 제국은 지배 엘리트가 지배하는 현 상황(status quo)을 유지하기 위하여 피보호자(client) 왕들을 협력자로 내세웠다. 로마 제국 지배하의 팔레스티나에서는 기원전 4년에 헤로데 대왕(Herod the Great)이 죽은 이후, 그의 세 아들들인 아르켈라우스(Archelaus), 헤로데 안티파스(Herod Antipas), 필립포스(Philip)가 여러 지역을 나누어 다스렸다. 예수님이 활동하시던 당시 갈릴래아의 영주는 헤로데 안티파스(기원전 4년~기원후 39년)였다. 그는 로마의 대행자(agent)로서 제국의 질서와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복음서의 두 본문(마태 14,3-12 마르 6,17-29)에서는 헤로데 안티파스의 생일잔치 이야기가 소개된다. 이 잔치에는 지배 엘리트들이 초대되었다. “헤로데가 자기 생일에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유지들을 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다.”(마르 6,21) 헤로데가 벌인 사치스럽고 향락적인 연회는 가난한 이들을 배제하는 엘리트 의식(elitism)의 표현으로서, 사회적 경계들을 통한 지배 그룹의 정치, 경제, 사회, 군사적 위계질서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자리였다. 이 생일잔치에서 음식은 이러한 지배 엘리트들의 사회적 위치를 반영하고 상호간의 친교를 확고하게 하는 수단이었고, 그들의 식탁은 배제를 본질로 하는 폐쇄적이고 특권적인 모임이었다. 이와 같이 권력에서 멀리 떨어진 가난한 민중에게는 식량이 부족하였지만, 헤로데와 권력자들은 사치스런 잔치를 벌인다.

헤로데 안티파스의 통치는 억압과 폭력을 그 특징으로 한다. 이것은 그의 생일잔치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헤로데는 자기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붙잡아 묶어 감옥에 가둔 일이 있었다. 요한이 헤로데에게 ‘그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기 때문이다.”(마태 14,3-4) 사실 세례자 요한은 헤로데가 그의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와 결혼한 것을 비판하였다. 그것은 율법을 거스르는 것이었다. “네 형제의 아내의 치부를 드러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네 형제의 치부이다.”(레위 18,16) “어떤 사람이 자기 형제의 아내를 데리고 살면, 그것은 불결한 짓이다. 그가 제 형제의 치부를 드러낸 것이므로, 그들은 자손을 보지 못할 것이다.”(레위 20,21) 지배 엘리트들은 근친 결혼을 통하여 동맹을 결성하고 영토를 확장했으며 권력을 성장시켰다.

세례자 요한은 이 중앙 권력의 동맹에 저항한다. 여기에서 헤로데가 로마 제국의 대행자라면,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의 대행자(agent)이다. 요한은 메시아 예수님을 위해 하느님의 백성을 준비시키고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예언자였다. “그 무렵에 세례자 요한이 나타나 유다 광야에서 이렇게 선포하였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3,1-2)

헤로데의 권력 행사는 파괴적이었다. 그는 폭군적인 통치자의 전형이다. 헤로데 생일잔치의 결과는 결국 세례자 요한의 목을 베는 것이었다. 헤로데의 행동에서 하느님 나라에 대한 정치적 저항과 불신앙은 적대감과 폭력으로 표현된다. 즉 그의 행동은 하느님의 뜻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권력자들에 대한 성경의 일관된 증언들을 상기시킨다. 하느님의 나라와 억압적인 제국의 질서 사이에는 끊임없는 갈등과 충돌이 일어난다. 하느님의 예언자 세례자 요한은 정치적 권력자로부터의 적대감과 폭력을 만나고, 그 희생이 된다. 이러한 요한의 운명은 결국 예수님의 운명을 선취한다.

이와 같이 헤로데는 현 상황(status quo)을 지키기 위해 하느님의 뜻에 저항하고 하느님의 대행자에게 폭력을 행사하였다. 헤로데의 생일잔치는 사치와 탐욕, 억압과 폭력을 잘 드러나는 자리였다. 가난한 이들이 배제된 지배 엘리트들만의 향연은 결국 죽임이라는 결과를 초래하였던 것이다.



송창현 신부는 1991년 사제수품 후 로마 성서 대학원에서 성서학 석사학위(S.S.L.)를, 예루살렘 성서·고고학 연구소에서 성서학 박사학위(S.S.D.)를 취득했다.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과 성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송창현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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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3-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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